광고닫기

작자 미상의 호작도

Chicago

2005.01.19 08:2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역사를 찾아서-김영희<미술평론가>
소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있다.
그리고 소나무 아래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까치를 보고 앉아 있다.

 까치가 마치 호랑이를 비웃는 듯 하다.
하지만 소나무ㆍ까치ㆍ호랑이 모두 왠지 깔끔한 이미지는 아니다.
때로는 구도가 제대로 맞지 않거나, 호랑이 모습이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쓴 듯 어색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연 언제 만들어진 그림인지 낙관도 없는 작자 미상의 그림, 바로 우리 민중의 그림인 민화(民畵),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양식을 보이는 <호작도(虎鵲圖)> 의 모습이다.

 호작도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민족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동물인 호랑이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와 특별한 관계를유지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사람과 가축을 해치기도 해온 포악한 맹수이기도 했고, 민간의 설화 속에서는 작은 동물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해온 우둔한 동물로 묘사되기도 했다.

<호작도> 는 이러한 민간의 호랑이에 대한 신앙이 반영된 그림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전능의 신으로 여겨지는 서낭신의 사자로서 우리와 아주 친숙한 새인 까치와, 서낭신의 신지를 받들어 시행하는 신령스런 동물로 알려진 호랑이와의 만남을 표현한 그림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인 까치가 서낭신 또는 산신의 신탁을 호랑이에게 전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민화 속에 등장하는 모습처럼 용맹스럽지만 결코 무서운 모습은 아닌 호랑이가 기쁜 소식을 민중들에게 전하는 모습, 그러한 모습을 통해 결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할 복을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민화의 경우, 소재 자체의 상징성과는 상관이 없이 단순히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길상의 상징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원숭이가 관계(官界) 등용을 상징하게 된 것은 원숭이의 한자말인 ‘후’가 제후(帝侯)의 ‘후(侯)’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로 호랑이는 보답한다는 ‘보(報)’의 의미를 가지게 됐고, 이것이 까치 즉 희조(喜鳥)와 결합하여 기쁨으로 보답한다는 ‘희보(喜報)’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민화는 그동안 작가를 증명해줄 낙관이 없고, 또한 그림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우리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해 왔다.
민화는 일부 양반 문인들과 화공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그림을 민중들의 일상으로 끌어들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호작도를 집에 걸고 신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하늘의 뜻에 귀를 기울이거나, 지혜로운 까치 설화처럼 순리대로 주변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런 소박한 마음 때문인지 소나무에 앉아 있는 까치와 그 까치를 보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호작도의 풍경 하나 하나가 마치 우리 민중의 모습을 보는 듯 정겨움이 느껴진다.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