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의 안방인 브롱스의 양키 스타디움. 야구시즌도 아닌데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MLB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양키스는 플로리다주에서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관중의 정체는 무엇일까. 뉴욕 시티FC-스포팅 캔자스시티의 축구를 보러 온 팬들이었다.
양키스는 올시즌부터 메이저리그 사커(MLS) 뉴욕 시티와 동거에 들어간다. 양키 스타디움을 프로야구ㆍ프로축구 팀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 양키스는 1901년 창단, 114년 동안 27번이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최고 명문 구단이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등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1923년 개장한 야구장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철거됐지만 2009년 미국에서 가장 비싼 15억달러짜리 신축 구장으로 재탄생했다. 경기장을 바꾸면 명칭도 교체하지만 양키 스타디움이란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그만큼 쉽게 버릴 수 없는 상징성을 지닌다. 최고 구단이라는 자존심이 강한 양키스가 자신의 안방을 갓 창단한 축구팀에 내준 것도 이례적이다.
*만수르도 뉴욕 시티 축구단 주주
뉴욕 시티는 2013년 MLS의 20번째 구단으로 창단한 막내 구단이다. 준비 과정을 거쳐 정규시즌에 합류한 건 올해부터다. 아랍 에미리트(UAE)의 왕자 셰이크 만수르(45)가 투자한 팀으로 창단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맨체스터 시티도 소유하고 있는 만수르는 최근 시티 풋볼그룹을 만들어 세계 축구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 F.마리노스의 구단 경영에 참여하고 있고 호주 멜번 시티의 지분 80%를 갖고 있다. 세계 축구단 수집에 나선 만수르는 미국을 떠오르는 시장으로 판단했다. 때마침 MLS도 리그 확장을 위해 해외 빅클럽과 손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졌다. MLS 사무국 주선으로 양키스가 창단 파트너로 합류했다. 뉴욕 시티 전체 지분의 20%를 갖고 있는 양키스는 구단 운영을 함께 한다.
그러나 경기장이 문제였다. 뉴욕에는 쓸 만한 축구장이 없었고 땅값이 비싸 신축도 마땅치 않았다. 뉴욕 시티는 당초 퀸즈의 한인타운에 위치한 플러싱 메도우스 공원에 경기장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공원에는 양키스의 라이벌 구단인 뉴욕 메츠의 홈구장 '시티 필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메츠는 적과의 동거를 허락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양키 스타디움 인근에 경기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018년 신축 경기장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양키 스타디움을 홈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양키 스타디움은 야구·풋볼·축구를 치를 수 있게 설계된 다목적 구장이다. 이동식 좌석을 갖추고 있어 축구 경기를 할 경우 최대 5만4251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야구장이 축구장으로 변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흘이다.
우선 스타디움의 외야 잔디를 걷어낸 뒤 축구용 천연 잔디를 다시 깐다. 돌출된 마운드를 땅 밑으로 내리고 내야에 있는 흙을 메운 뒤 홈플레이트를 구단 심벌로 가리면 준비가 완료된다.
*다목적 구장으로 구단 주머니 두둑
야구와 축구의 공존이 현재까지는 순조로운 분위기다. 미국에서는 경기장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없다. 어떤 프로 스포츠도 1년 내내 시즌을 치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실제 경기장을 사용하는 날이 많지 않다. 하루라도 경기장에 관중이 모여들면 구단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미국의 다목적 구장은 196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프로 스포츠의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지만 대도시에는 구장을 지을 장소가 부족했다. 경기장 건설에는 대규모 주차시설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마땅한 부지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야구-풋볼의 공존이었다.
시즌이 중복되지 않는 야구와 미식축구를 함께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이 잇따라 탄생했다. 부채꼴 모양의 야구와 직사각형 모양의 미식축구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원형의 구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구장들을 '콘크리트 도넛'이라고 불렀다.
함께 지내다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9월이면 야구와 미식축구의 시즌이 겹치는 데다 천연잔디는 교체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독자적인 마케팅도 제약을 받았다. 하나 둘씩 관계 정리에 들어갔고, 현재 야구(애슬레틱스)와 풋볼(레이더스)이 경기장을 함께 사용하는 곳은 오클랜드 카운티의 콜리세움 뿐이다.
그러나 이벤트 대회는 꾸준히 열리고 있다. 북미 아이스하키(NHL)는 매년 1월1일을 전후로 '겨울의 고전(Winter Classic)'으로 불리는 스타디움 시리즈를 개최한다. 야구·풋볼 등 야외 경기장에 간이 링크를 설치해 정규리그 경기를 치른다.
스타디움 시리즈는 지난 39년간 NHL TV 시청률 순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팬들의 관심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