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외신기자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주요 4개 부문 (작품, 남녀 주연, 각본)에 후보로 지명됐지만, 아깝게도 수상은 못했다.
그러나 상을 꼭 수상해야만 우수작이 아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영화는 다툼 끝에 상대방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는 특수치료를 받은 한 쌍의 연인들의 이야기다. 멜로와 환상, 또는 SF가 적당히 버무러진 영화다.
주인공이 짐 캐리라는 걸 알면 먼저 코미디를 떠올리겠지만 이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짐 캐리가 맡은 역도 진지한 역이다. 그가 진지한 역을 맡은 게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 한 차례
<트루먼쇼>
에서 내면적인 연기를 선보여 그런대로 합격점을 얻은 바 있지만, 당시엔 일회성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짐 캐리가 그저 과장된 표정과 기성, 몸짓만으로 웃기기나 하는 배우가 아님을 증명한다. 오죽했으면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겠는가.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된 케이트 윈슬렛도
<타이타닉>
에서 보여줬던 뻣뻣한 연기에서 벗어나 생동감이 넘치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스파이더맨>
의 커스틴 던스트와
<반지의 제왕>
의 일라이저 우드의 역할과 연기는 평범한 수준에 머문다.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찰리 카우프만은 웬만한 배우보다 유명한 인물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
,
<휴먼 네이처>
,
<어댑테이션>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기발한 아이디어 번득여 자신만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로 이 영화에서도 예의 그 기발함이 넘친다.
프랑스인인 미셸 공드리 감독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뛰어난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조얼 (짐 캐리 분)의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랑이란 운명지워져 있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부터 무리가 있다.
그리고 기억을 지워버린 두 주인공이 테입에 녹음된 내용을 듣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훤히 알게 된 것처럼 행동한다든지, 기억 삭제 병원의 리셉셔니스트인 매리 (커스틴 던스트 분)가 자신의 특정 기억도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고선 병원 고객들에게 비밀을 폭로한다는 건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더구나 매리의 행동이 마치 정의와 진실를 찾는 일처럼 묘사되지만 사실은 윤리적으로 지탄 받아야 할 행위이다. 각자 나름대로 괴로운 기억을 잊고자 비용을 지불하고 기억을 제거한 고객들에게 잊혀진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그 고객들이 겪게 될 혼란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 없이 무책임한 행동을 한 것이다.
또한 매리가 치료 기술자인 스탠 (마크 러팔로 분)이나 닥터 하워드 (탐 윌킨슨)에게 추파를 보내거나 스탠과 고객 치료 중 벌이는 작태는 영화 말미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과 너무나 판이한 캐릭터인지라 이 또한 시나리오 상의 헛점으로 보인다.
원래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은혜스러운 기능이 있어 괴로운 과거는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석되고 아름다운 기억들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 영화에서처럼 억지로 특정 기억을 지우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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