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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 한 쌍의 바퀴벌레

Washington DC

2005.01.2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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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오기 전 바퀴벌레 때문에 혼이 난 적이 있다. 여러 집이 사는 아파트라 그랬나보다. 언제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다 잡았다고 생각하면 또 나타타고 또 나타나곤 해서 정말 겁이 났었다.

 바퀴벌레를 좋아할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설거지를 끝내고 들어 왔다가 물이라도 가지러가서 불을 켜면 재빨리 자취를 감추는 바퀴벌레,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시어머님 말씀에 집이 흥하려할 때나 망하려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게 바퀴벌레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왔다.

 버지니아 교회에 다닐 때 집사님 한분이 미군부대에서만 쓰는 아주 성능 좋은 바퀴벌레약이라고 추천을 하셔서 때마침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잔뜩 구해다 구석구석 놓아두었다. 그 약 덕분이었을까, 바퀴벌레 때문에 아직까지 곤욕을 치르지는 않고 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겁은 난다. 큰소리 쳤다가 코다칠일 생길까봐 그렇다. 그러나 바퀴벌레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이외수도 그렇다.

 “인간들은 이제 바퀴벌레가 미워도 빙하기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바퀴를 굴리며 종족을 보존해온 생명의 불가사의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는 표해야한다”고.

 곤충학자들에 의하면 그 생명력에 대해서 바퀴벌레만큼 위대한 동물이 없다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양치식물이 처음 싹을 틔울 때도 이미 존재했고, 공룡과 같은 시대에 대지를 누비고 다녔으며 빙하기에도 살아남아서 종족을 번식시켰다고 한다. 바퀴벌레는 온갖 극한상황에서도 살아남아 현재 4천종 정도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3억5천만년이라는 엄청난 세월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된 곤충이라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못 먹는 것이 없다. 모든 음식 찌꺼기를 비롯해서 머리카락, 비듬, 발톱, 가래침, 굳은 피, 분뇨는 물론 죽은 동료의 몸까지 뜯어먹는다. 종이, 가죽접착제, 페인트, 비누, 전깃줄 같은 유기물질도 먹을 수 있다. 목이 잘린 바퀴벌레는 1주일쯤 산다. 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먹이를 먹지 못해 죽는 거다. 바퀴벌레는 방어능력도 뛰어나다.

틈이 1~2미리 미터만 되면 어디든지 비집고 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발에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남으며 적에게 잡혀 다리가 끊어지면 탈출한 뒤 다리를 재생시킨다. 살충제에 의해 혼이 난 일이 있으면 이를 기억했다가 미리 피할 줄도 안단다. 곤충을 상대로 한 미로탈출 테스트에서도 가장 높은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가하면 홍콩에서는 바퀴벌레튀김을 길거리에서 팔아 연인들이 잘 사먹고, 유럽에선 바퀴벌레 말린 가루를 늑막염약으로 쓸 뿐 아니라 대만에선 감기약으로, 일본에선 생리불순치료제로 쓰므로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는 것이다.

 3억 년 전 화석에 바퀴벌레가 있어 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고 하니 지구 최고의 원주민임이 분명한데 거만한 인류에게 영토를 빼앗긴 한 많은 이산동물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고 말한 이는 곤충학자 파브로이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길이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세계 최대의 바퀴벌레를 비롯해서 처음 보는 어류와 곤충 달팽이들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쓰나미를 알고 미리 은신처에서 탈출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바퀴벌레는 줄행랑치는데도 선수인데 감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도 고작 0.001초란다. 그러니 사람보다 100배나 빠른 셈이다. 덕분에 곤충학자들은 물론 영양학, 신경 생리학, 유전학, 심지어 암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이 총집중되고 있다. 질병에 강하고 안 먹고도 견디는 강인한 체력에 탁월한 운동신경 때문에다. 그래서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에 탑승하는 영광을 갖기도 했다. 지금쯤 바퀴벌레가 우주 속 어느 혹성에서 원주민으로 대세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로봇은 약점 투성이의 사람모양을 모방할 게 아니라 바퀴벌레모양을 빌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이는 캘리포니아대학의 로버트 풀 교수이다.

 한 쌍의 로봇 바퀴벌레가 이번 크리스마스선물로 아들에 의해 우리 집에 들어왔다. 병균을 옮기는 바퀴가 아니라 온갖 오물을 챙겨 먹어주는 자동진공청소기다. 구석구석 혼자 다니며 먼지를 먹는 게 꼭 바퀴벌레 같아 친해지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고백컨대 사담 후세인 수준은 아니다. 세상 겁날 것 없던 사담 후세인이 가장 무서워한 게 바퀴벌레라고 한다.

그의 하녀의 증언에 의하면 바퀴벌레가 침대로 기어 올라오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가곤 했다니 폭탄이나 군대보다는 바퀴벌레를 대량으로 공수했더라면 이라크전쟁에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의 피 가학과 혐오의 강박심리는 유명하기도 하지만 내개는 불쌍하고 딱하다는 생각이 더 크다. 귀여운 한 쌍의 바퀴벌레 같은 청소기를 보며 불가사의만 같았던 그들의 생명력에 야릇한 호기심을 느껴보게도 된다.

위 아래층에 한 마리씩 스위치를 올려놓고 나간다. 한 쌍의 바퀴야, “오늘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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