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성행위가 그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몇만 년이 되는지 확실치 않으나 지금까지 지켜 온 상식이었다.
그러나 인공임신 기술의 개발로 이 오랜 상식이 무너졌다. 성행위를 거치지 않아도 모태 채용이나 시험관 수정으로 생명의 탄생이 가능해졌다.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전이 생명을 다룰 경우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어떤 부인이 "셋째는 실수로 낳은 딸년이어요"라고 예사롭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피임 과정의 실수라는 뜻이겠지만 탄생된 생명을 놓고 쉽게 '실수'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성행위는 임신의 수단 뿐만 아니라 쾌락의 방법 사랑의 표현 심지어는 부부간의 의무감 등 복잡한 동기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동물적인 본능을 넘어선 도덕성이나 사랑의 윤리가 문제될 수밖에 없다.
"인공수정에도 사랑이 들어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경우는 자식을 갖고 싶다는 일방적인 애착심이지 '나누는 사랑'이 아니다.
임신을 쾌락의 결과로 보는 것은 인간을 동물로 다루는 것이며 마땅히 사랑의 결합으로 보아야 그 열매로 태어난 생명이 사람다워진다. 부부간의 엄연한 성관계가 강간으로 고소되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섹스를 마음의 문제와는 별도로 기계적 수단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인 포 보발리는 "눈으로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면 거리는 임산부로 가득 찰 것이며 눈으로 살인을 할 수 있다면 거리는 시체의 산을 이룰 것이다"라고 욕정과 미움을 갖는 인간의 속성을 고발하였다.
한국의 한 총각이 뒷동산에 누워 동네 처녀 전부와 공상의 정을 맺으며 하루 종일 자위행위를 하는 단편 소설이 있었다. 이런 식의 욕정을 사랑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임신을 욕정의 씨앗으로 만든다면 불행한 일이다.
'맥콜(McCall's)' 잡지가 성생활에 충분한 경험이 있는 중년 여성 2만명에게 "성행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았는데 61%가 '가깝다는 느낌'에 체크했다. '플레이보이' 잡지의 야켈로비치(Daniel Yankelovich)도 남성을 상대로 비슷한 조사를 했는데 역시 같은 응답을 받았다.
가깝다는 느낌은 마음의 결합을 뜻한다. 그것이 아마도 성행위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생긴 불꽃이 임신이라면 무척이나 당연하고도 다행한 일이다.
토머스 버니( Thomas Verny) 박사는 그의 명저 '태아의 숨겨진 생명(The Secret Life of the Child)'에서 "아직 모태에 있는 생명일지라도 부모의 포옹이 필요하다. 사랑은 정서적인면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태아에게 절대 필요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한 태아도 부모의 사랑에 영향을 받으며 특히 엄마와 아빠 사이의 사랑이 태아를 행복하게 성장시킨다는 버니 박사의 주장은 성행위에 의한 임신의 출발점부터 태아기에 걸친 새 생명에게 외부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한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스마일리 블랜턴(Smiley Blanton)은 성행위에 대해 정의하기를 "상대방에 대한 열렬하고 긍정적인 관심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자기 본위적이어서도 안 되고 쾌락 충족만을 목적으로 해서도 안 되며 더욱이 상대와 주변에 대한 파괴적인 행위여서도 안 된다.
인류학자 언윈(J. D. Unwin)은 "인류가 겪어온 88개 문명의 흥망사에서 재미있는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다. 어느 문명이나 그것이 일어나는 시대에는 성도덕이 건전했고 그것이 쇠망하는 시대에는 성도덕이 문란했다"라고 말하였다.
아동의 10%가 13세에 섹스의 경험이 있고 10대 소녀의 10%가 해마다 임신하여 대학생의 66%가 혼전 정사를 체험했고 혼전 정사가 부도덕하지 않다고 80%가 생각하는 미국의 성문제는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를 넘어 문명에 관계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