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흑인 빈민가의 빵퍼
전종준 칼럼
어린시절 거지와 구두닦이였던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감사가 있었다. 미국으로 와 볼티모어에 정착해 살면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다보니 노숙자들과 도시 빈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배고픈 자가 배고픔을 알고 고통을 당한 자가 고통의 참 의미를 안다고 했던가? 배가 고파보았고 길거리 삶을 체험했던 오향숙씨는 그들의 배고픔과 고통이 결코 남의 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둡고 괴로웠던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금의 행복으로 과거를 포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자신도 변호사 일을 하면서 보통은 유료로 도와주지만 때로는 무료로 도와주기도 하고 한다. 그러나 무료로 도와주는 분들이 감사하기 보다는 도리어 유료로 도와준 분들이 감사하며 찾아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지난날 어려운 시절을 돌아보며 자기에게 베풀어 준 이들에게 감사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오향숙씨가 용기를 내어 처음 찾아간 다운타운 노숙자들은 그저 한두번 오다 말겠지하고 시큰둥하더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가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하니 어느날 부터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배식을 받고 그냥 돌아가 밥만 먹던 그들이 이제는 텐트 치는 것을 도와주고 뒷정리를 도와주는 어엿한 동역자가 되었다. 다운타운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데 그곳을 경비하는 분이 와서 이곳은 유명 관광지이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 되니 하지말라는 경고를 했다. 또 한번은 시청앞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곳에서도 같은 이유로 쫒겨나고 말았다. 무조건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앞뒤 생각안하고 갔지만 뒤에 생각해보니 그분들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운타운이나 시청은 볼티모어의 얼굴이요 관광지인데 생각이 짧았다는 후회를 한적도 있다. 이제는 그녀가 가야할 곳과 피해야 할 곳을 알만큼 경력이 쌓였다. 직장도 그만두고 이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인 남편의 이해와 도움이 있었다. 아내의 행복해 하는 모습에 같이 행복해 하고 뒤에서 도와주는 절대적인 후원자가 된 것이다.
월요일에는 200인분을,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10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 배고픈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나간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먹기 좋은 샌드위치가 그들을 기다리고 겨울에는 뜨거운 국물이 그들을 반겨준다. 그녀가 준비한 음식으로 행복하게 웃으며 밥을 먹는 그들을 바라보며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이제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그중 몇사람은 빵을 먹고 전 재산인 1불을 주고 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가짜 플라스틱 목걸이나 팔찌를 선물하기도 한다.
볼티모어에 뜻하지 않은 폭동이 일어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그녀의 사랑의 빵퍼도 잠시 중단되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배고파 하는 그들의 얼굴로 걱정스럽고 안쓰럽다. 보이지 않는 한흑간의 갈등이 이런 빵퍼의 사랑으로, 혹은 그들을 안아주고 소통하며 친구가 되어 준다면 이 갈등 또한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사심없는 유띵킹이 큰 일을 해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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