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움베르토 에코의 '바우돌리노'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신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동방의 이상국을 찾아 주인공과 수도사 친구들이 헤쳐가는 탐험과 모험의 이야기를 담은 역작이다.
주인공들은 희한하게 생긴 지도 한 장을 찾아 쥐고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계 발도 하나 눈도 하나 달린 괴물이 사는 곳 등을 찾아간다. 현대 과학과 지리를 아는 이들로서는 이들의 모험 동기조차 어이없기 그지없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소설의 책장이 넘어가면서 그 '황당한 상상'이 '분명한 현실'로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에코의 무한대에 가까운 '중세적 상상력'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수년전에 읽은 탓에 비록 지금은 내용조차 가물가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 바우돌리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맨해튼 '클로이스터스 박물관(The Cloisters)'에 가면 그러한 중세적 상상력을 몸소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클로이스터스 박물관은 맨해튼 끝자락 포트 트라이온 파크(Fort Tryon Park 190스트릿)안에 위치하고 있다. 허드슨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마디로 '전망이 끝내주는' 요지(?) 이다.
현재 이곳에 소장.전시된 유물은 모두 5000여점. 시간상으로는 지난 8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들이다. 특히 12~15세기 문화재들이 상당수를 점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가져왔다. 조각과 그림 접시와 의자 책 등 종류도 다양하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신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시절'답게 모든 것이 신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클로이스터스 박물관이 유명한 이유는 이들 전시품 때문만은 아니다. 박물관 건물 자체가 주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경건한 분위기가 오히려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클로이스터스 박물관은 지난 1938년 건축가 찰스 콜린스(1873~1956)가 만들었다. 중세 유럽의 유명 건축물과 건축양식을 빌려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독특한 매력의 건축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여기에 유명 조각가이자 중세예술품 수집가였던 조지 그레이 버나드(1863~1938)가 자신의 작품과 소장품들을 전시.추가하면서 박물관은 더욱 더 가치를 높이게 된다.
특히 가운데 공간을 연못과 정원으로 비워두고 네모 낳게 복도를 둘린 큐사 클로이스터(Cuxa Cloister)와 트리에 클로이스터(Trie Cloister) 보네포트 클로이스터(Bonnefort Cloister) 등은 중세 수도원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짙은 갈색 수사복을 입은 젊은 수도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이다.
화려한 스태인드글라스와 둥글게 높이 올라간 천장 끝마디가 화려하게 조각된 돌 기둥 등은 웅장과 엄숙미를 내세운 로마네스크 양식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이 또한 박물관 여행의 전부는 아닐 터. 박물관 외부 테라스와 실외카페에서 만나는 풍경은 실내에서 느꼈던 엄숙함과 신비함과는 전혀 다른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 만나는 서쪽 테라스(West Terrace)에 서면 남북으로 길게 뻗어 흐르는 허드슨 강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조각칼로 뭉툭하게 내려 깎아 놓은 듯한 강 건너 뉴저지 절벽도 감상하기에는 그만이다.
박물관 아래층 프로빌 아케이드(Froville Arcade)에서는 둥근 기둥에 앉아 햇볕을 쬘 수도 있다. 한쪽으로는 허드슨강 다른 한쪽으로는 박물관의 고풍스런 벽면을 배경삼아 휴식을 취하다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는 봄 눈 녹듯 사라진다. 실제로 관람객 가운데 상당수는 박물관 투어보다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데 상당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서 지나는 포트 트라이온 공원 역시 뉴요커들에게 최상의 산책과 휴식 공간으로 애용되는 곳이다. 시간 여유가 조금만 있다면 공원 여기저기를 걸으며 허드슨 강의 풍경을 내려다 보는 것도 아주 좋은 휴식이 될 듯하다. 맨해튼에서 즐기는 하루짜리 여행으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문 여는 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45분까지. 3월부터는 오후 5시 15분로 폐장시간이 연장된다. 입장료는 어른 15달러 65세 이상 10달러 학생 7달러이다. 12세 미만 무료이다. 당일 입장권으로 같은 날 메트로폴리탄박물관(5애브뉴 82스트릿)도 이용가능하다.
헨리허드슨파크웨이 노스를 타고 공원입구로 들어가거나 포트워싱턴애브뉴를 따라 포트 프라이온파크로 들어온다. 대중교통 이용시에는 A전철을 타고 190스트릿역에 내리거나 M4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