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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이 넘치는 한국 ‘스승의 날’

Washington DC

2015.05.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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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박사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스승의 날’을 정하고 지킨다. 한국에서는 5월 15일 세종대왕의 생일을,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들이 5월 첫 화요일로 금년에는 5월5일이 ‘스승의 날’(Teachers’ Day)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이 미국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주에 종강을 했다. 학생들은 종강하는 날 조촐한 다과를 마련했다. 반장 학생이 “교수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반을 대표해서 인사를 했다. 학생들의 사정을 그런대로 잘 알고 있는 나는 사정에 따라서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학생비자로 공부하면서 영주권을 기다리는 학생들이다. 세상이 어지럽다고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참 착하다. 학생들은 한국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정(情)을 가지고 있었다.

정은 한국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특징이다. 정에는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있다. 그런데 고운 정은 이해할 수 있는데 미운 정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어떤 때는 미운 정이 더 깊이가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정이 바로 그것이다. 정은 한(恨)과 마찬가지로 영어로 번역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잘 번역을 한다해도 그 진국을 들어내지 못한다. 정과 한의 참 뜻은 한국에서 태어나 오래 동안 살면서 경험한 사람이나 알 수 있다. 나는 한국과 미국에 살면서 한이 맺힌 사람들도 만났지만 정이 어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리고 한이 맺힌 사람들도 나중에 정으로 변하는 경험을 부지기수로 했다.

나는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에서 11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11년 은퇴했다. 한동대학에는 두 가지 스승이 있다. 학생들에게 학과를 가르치는 교수와 캠퍼스 생활을 지도하는 팀 교수가 있다. 20여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팀 학생들은 팀 교수와 함께 채플 참석, 성경공부, 봉사활동, 개인문제 상담 등을 하면서 캠퍼스 생활을 한다. 팀 교수는 이를테면 담임선생과 비슷한 역할을 감당한다. 한 팀은 다른 학년 성별 국적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팀 구성원이 바뀐다. 나는 지금도 내가 맡았던 팀 학생들의 정을 잊지 못한다. 졸업을 한 학생들 가운데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전화나 온라인 카드를 보내주는 학생들이 있다.

‘스승의 날’에 강의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나 ‘스승의 은혜’를 합창한다. 합창이 끝나면 대표학생이 기도를 인도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내 연구실 문은 학생들이 보낸 카드와 꽃으로 치장이 되어 있다. 대학 교회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이 이어진다. 그 날 저녁 학생들이 마련한 삼겹살 파티가 교정에서 벌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캠퍼스의 풍경인가?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정이다. 이 정은 한국사람들이 사는 세상 어느 곳이나 있다.

나에게는 잊지 못할 정을 주신 두 스승이 계신다. 한 분은 초등학교 1학년을 담임했던 오히라 일본 여 선생님이다. 1945년 해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가시게 된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을 하시는 날 학생들 앞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시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학생 한사람 한사람을 안아 주셨다. 그 후로 나는 오히라 선생이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 길이 없다가 한참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한분은 고등학교 신태식 선생님이다. 한번은 숙제를 하지 않아 훼초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만해도 선생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으며 한이 맺혔다. 그 후 산전수전 다 겪은 나는 미국에서 선생님을 뵌 적이 있었다. 우리 둘은 밤 늦도록 옛날 이야기들을 나누며 눈시울을 적셨다. 선생님은 어느듯 80고개를 넘겼으며 나는 50대 중년이 되었다. 3년후에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두 선생님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뵙고 싶다. 정말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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