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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Story] 박범훈 구속사건이 주는 교훈

Los Angeles

2015.05.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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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진달래 어린이무용단을 이끌고 서울올림픽 1주년 기념공연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진달래의 서울공연을 위해 박범훈의 곡을 콩쥐팥쥐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공연후 박범훈은 무대 뒤로 찾아와 "제 음악의 노른자만 잘 골라서 쓰셨네요. 작품구성을 아주 재미있게 하셨어요."라며 축하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있다.

'국악계의 대부'로 불리던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박범훈의 최근 구속사태는 한국문화계 뿐만 아니라 필자에게도 충격이 아닐수 없다.

모교인 중앙대 캠퍼스 통폐합 과정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는 그는 문화예술계에서 닦은 기반과 입지를 활용, 최고의 출세를 이루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범훈은 서울올림픽, 한·일 월드컵 등 세계적 행사의 개막식에서 음악 총감독, 지휘 등의 중대임무를 수행하며 한동안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중 영향력 1위의 자리를 고수했었다. 이명박 당선 이후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고 그 후 승승장구를 거듭, 중앙대 총장과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에 이르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박범훈이 어떻게 그런 출세 가도를 달렸는지는 그의 개인적 역량에 관한 것이니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의 구속을 계기로 우리나라 예술계에 팽배해있는 관료주의적 습성들과 관의 지나친 간섭, 그리고 그에 따른 행정적 비리와 부조리 현상들에 대해서는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예술인들은 본질적으로 관료주의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무리들이다. 예술이 지닌 최고의 힘은 작가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표현인데, 그런 예술행위에 제재를 가하는 관료주의적 지침들에 대하여 예술인들은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관과 결부되지 않으려는 예술가의 의지는 종종 예술가의 자존심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존재는 그가 영원히 예술가로 남아있을 때 참다운 가치를 지닌다. 박범훈은 국악계의 탁월한 작곡가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랬으면 훗날 대한민국의 위대한 예술가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고 음악계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작곡가로서 추앙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자리에서 잠시 누렸던 명예와 특혜로 인한 오늘의 처참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예술인들은 유달리 정부기관에 매달려 출세의 길을 가보려는, 보기 거북한 기웃거림에 익숙해 있다. 정부·관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서로를 헐뜯고 관이 주는 훈장을 받기 위해 추할 정도의 욕심을 보이기도 한다. 각자의 예술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고위 관료들과의 연줄을 찾아 '세속'에서도 출세를 해보려는 의지들이 너무 강하다.

왜 우리 예술인들은 이처럼 관료들과의 유착을 통해 스스로 관료주의의 노예임을 자처(?)하는 것일까? 관이 예산권을 무기 삼아 예술계를 좌지우지해온 관례는, 거꾸로 예술발전의 심각한 저해요소이며 예술창조의 기본정신인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박범훈의 구속사건이, 권위주의 시절 문화행사를 정권의 도구로 여겨왔던 부조리한 관행을 타파해가는 문화민주주의의 진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관료주의와 타협을 끝내 거부하며 예술창조를 위한 자유를 지키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이병임
<무용평론가, 우리춤보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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