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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415



전철 안 홍해

-윤석산

그가 저쪽 칸에서 이쪽 칸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들 모두 양쪽으로 갈라서며 길을
열어 주었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것과도 같이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그는 우리들 사이를 건너고 있었다.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건너는 음악의 홍해
여기 저기 때로는 동전 한 닢, 때로는
지폐 한 장 던져주는 사람들 사이,
동전도 지폐도, 또 세상도 아랑곳 없다는 듯
그는 다만 구슬픈 음악으로
이 칸에서 다시 저 칸으로
기적이 없는 시대의 기적, 꿈꾸듯
그렇게, 그렇게 그 건너가고 있다.

전철 안에도 홍해가 있다. 목구멍이 천국인 모세 아닌 모세. 그들은 갈라지지 않는 바다, 사람바다를 가른다. 전철 안은 갈라도, 갈라도 갈라지지 않아, 건널 수 없는 홍해다.

사람 사이 건너는 음악의 홍해, 사람바다 건너는 슬픈 행상의 홍해다. 옹색한 버스 안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은 전철 안, 그곳은 버스보단 넓직한 바다 길이다. 이어폰에 귀를 매달고 듣지도 보지도 않는 음악홍해는 무릎 위에서 관심이 없다. 그래도 행상은 고기 안 잡히는 홍해를 음악으로 건너간다.

전철 안 사람들의 물결, 마치 홍해의 밀물과 썰물 같다. 그렇게 군중들이 밀려왔다 밀려나간다. 그 속에 필요 없는 복음을 파는 모세 같은 모습, 음악을 건네주며, 구슬픈 음악으로 목숨을 말하며, 칸칸이 군중 속을 오간다.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기적이 없는 시대를 기적으로, 동전 한 닢, 목숨을 말하며, 작은 지폐 한 장의 기적을 꿈꾸듯 꿈꾸며, 그렇게 삶의 홍해를 건너고 있다. 이 홍해를 함께 건너던 시인, 쓸쓸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아픈 삶을 보고 울고, 삶의 슬픔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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