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공군 5만명 격파한 파로호
유흥주 칼럼
한미자유연맹 이사장
관대리를 거처 위치를 알 수 없는 대 여섯 군데 더 부대가 이동하고 중부전선 2군단을 지원하라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강원도 화천군 대이리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가 바로 최고 격전지의 목표물이된 화천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나는 전투병은 아니였지만 내가 맡고 있는 특기는 공병기술병과의 행정담당으로 5년간 2군단(군단장 정일권) 여하 각사단의 공병중장비를 손바닥 보듯이 파악하고 관리해야 하는 임무로서 전방 격전지에서 불도저나 공병중장비가 고장났다는 전화가 오면 낮과 밤 상관없이 10여개 비상 대기팀이 각자 완전무장하고 현장으로 출동해 장비를 검사하고 함께 간 이동정비팀이 수리하고, 포탄에 맞아 파손됐으면 사무실로 돌아와 Heavy Equipment Inspection Sheet에 고문관 싸인 받아 의견서를 첨부해서 후송하고 즉시 새 장비로 교체해 주는 중장비관리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때로는 적의 포탄세례가 겁이 나서 운전병이 불도저가 고장났다고 보고하고 좀 안전한 곳으로 숨어 있는 수도 많았다. 낮이나 밤이나 포탄이 작열하는 전쟁터에서 엔진이 꺼저서 다시 시동을 걸어도 안걸려서 고장 보고했다면 추궁없이 그냥 넘어가는 수도 많았다.
내가 군대생활 5년을 이곳 화천발전소와 저수지가 있는 곳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잘 안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정 때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댐으로 인해 생긴 인공호수다. 지금은 10억 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규모의 호수로 상류에 평화의 댐이 있다. 이 발전소를 사수하기 위해서 북방으로 백마고지, 펀치볼, 중부전선에서는 평강에 대치하여 철의 삼각지대를 이루는 철원과 금화를 점령했고, 동부는 고성까지 올라가 있었다.
미 제9군단과 국군 제6사단은 화천저수지 일대를 확보하였는데. 화천발전소와 구만리 고개를 아군이 차단하자 오음리와 유촌리 일대의 적들은 이곳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였다. 이 지역의 구만리 고개로부터 양구 일대에는 중공군 제12. 15. 20. 27군 등 4개군 소속의 패잔병 5만~6만명이 갇혀 있었다. 퇴로를 차단당한 중공군은 화천 저수지를 헤엄쳐 도주하려다가 익사하는가 하면 유엔군의 네이팜탄 공중 폭격과 무제한으로 허용된 포병 사격에 대부분 전멸하여 화천 호숫물이 안보일 정도로 5만여명의 중공군 시체가 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넓은 화천호수가 물반 시체반이란 말을 남겼다.
서부전선은 계속 밀려 황해도와 경기도 곡창지대를 적에게 빼았겼지만 중동부 전선은 화천발전소를 지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했기에 38선을 지나 북쪽으로 35km까지 진격해 동부전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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