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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스데이 유래는…홀아비 6남매 가정의 딸이 만들어

Washington DC

2015.06.19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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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매년 10억불 이상 지출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은 파더스 데이, 즉 아버지의 날이다. 미국 파더스 데이의 유래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8년 7월, 웨스트버 지니아주 머농거 지역의 한 탄광에서 362명의 광부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치러진 장례 예배에서 ‘아버지를 위한 날’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됐다.

이듬해 워싱턴주의 소노라 스마트 도드(사진)라는 여성이 마더스 데이와 같이 아버지를 기리는 날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마더스 데이가 연방 공휴일이 된 것은 1914년부터지만 1868년부터 각 지역을 중심으로 이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소노라 도드는 홀아비 가정의 6남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도 어머니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지역 교회와 YMCA, 주정부 인사들에게 로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1910년 7월 19일, 워싱턴주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파더스 데이를 공휴일로 제정했다.

이후 파더스 데이라는 개념은 미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으며 일각에서는 마더스 데이와 합쳐 기리는 어버이날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0년대에 미국에 닥친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소상인들을 중심으로 파더스 데이를 따로 기리자는 움직임이 거세졌다. 이들은 파더스 데이를 ‘제2의 크리스마스’라고 선전하며 넥타이와 모자, 양말, 담배, 골프채 등 남성용품을 할인 판매하기 시작해 파더스 데이 풍습을 만들어 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비즈니스 관계자들은 파더스 데이에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의미를 더하기 시작했다.

마더스 데이를 만들기 위해 앞장섰던 여성 인권운동가 애나 자비스의 원래 계획은 하얀 카네이션을 가슴에 걸고 어머니나 교회를 찾는 풍습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꽃집들과 편지 카드 회사들이 이 공휴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여생을 공휴일 폐지를 위해 로비를 펼쳤다. 마더스 데이와 마찬가지로 파더스 데이도 기존 취지와는 달리 상업화된 채 미 전역으로 퍼졌다.

파더스 데이는 1972년 리차드 닉슨 대통령이 정식 연방 공휴일로 제정한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파더스 데이에 아버지들 선물을 위해 1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한다.

김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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