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마시는 커피 왜 나는 안 될까? 어쩌다 커피를 입에 댔다 하는 날은 꼬박 밤을 새야 했다. 누군가 아침 일찍 마시면 괜찮다고 하기에 그렇게 해보았다. 아침에 마신 반잔도 나를 24시간 붙잡았다. 디켑으로 바꾸어도 보았다. 그것도 그랬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지 못한 세월이 30년이다.
오래 전 한참 젊었던 시절 20대 중반이었다. 종로의 한 한의원 의사가 내 맥을 짚어보더니 첫마디에 “커피와 계란은 당신에겐 독이야!”라고 했다. 그래도 별 생각 없이 마셨었다. 처음 미국 온 다음날 길 건너 세븐일레븐에 혼자 걸어가 제일 먼저 집어든 것도 커피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커피를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맥 하나 짚어보고 집어낸 또 하나의 흠.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소?” “1등 했어요”라고 할 수가 없어 “못하지는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의사는 나를 쏘아보며 “찬성할 수가 없소. 당신 몸에는 피가 없소”라고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편식이 더욱 심해져서 안 먹는 게 많았었다. 부모님 걱정 끼쳐드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 대용혈액주사를 1시간씩 걸려 맞곤 했던 걸 그 할아버지 의사는 집어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한의학을 존중하고 신뢰했다. 마침 대학 선배가 비서로 있던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 선생님을 소개받고 그 분의 저서도 받고 진찰도 받았다. 노정우 박사님이셨다. 그 이후 나는 지금도 ‘백만인의 한의학’이라는 책을 가끔 꺼내 읽으며 복습한다. 그리고 호기심과 자가진단의 하나로 커피와 계란을 같이 먹어본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내게 호흡곤란증이 온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답답하고, 무거워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제와 고백을 하자면 제일 좋아하는 게 하필이면 커피하고 계란이다. 딱 한 가지만 골라보라면 지금도 나는 커피를 들겠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 사‘를 쓴 마크 펜더그라스트도 커피 한 모금 하면 ”피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굵은 첫맛, 쌉쌀한 뒷맛, 한 모금 두 모금 줄어드는 게 아쉬움을 더해간다”고 쓰고 있다. 일전에 민간 우주선 개발업체 스페이스X 가 우주에 에스프레스 머신을 배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플로리다 케이프 케나벨 공군기지에서 무인우주화물선 드래건을 성공적으로 발사, 커피머신을 함께 보냈단다. 우주에 체류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여성우주인 사만타 크리스토프레티의 부탁이었다고 한다. 그 동안 그 여자 얼마나 커피가 마시고 싶었을까?
20년 전에도 한국인이 한해 평균 325잔씩 마셔서 일본의 2배, 대만의 5배였다. 20대는 미국인보다 더 마신다는 커피, 한 잔에 19000원짜리 커피도 줄서서 산다는 최근 뉴스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는 러시아 공사가 남하하려는 흑심을 품고 민비에게 납이 든 화장품을, 고종에겐 가베(커피)를 인이 박히도록 마시게 했다는 데서 시작된다. 친로파 몰락에 앙심을 품은 김흥륙이 고종과 세자의 커피 잔에 독을 타려던 음모도 있었다.
고향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지만 12세기 십자군원정 때 이슬람에서 건너온 거라며 이교도 음료로 배척받던 커피, 교황으로부터 공인받아야 했던 커피, 이제 지구는 물론 외계에서까지 마셔대는 커피, 이만큼 참았으면 나도 이제 조금씩 조금씩만 다시 마시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