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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는 사람이 좋다

Vancouver

2005.05.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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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잘 음식을 앞에 놓고 사람들을 떠올리곤 한다.
어떤 때는 사람은 기억에 없이 음식을 먹는 특이한 버릇이나 우스꽝스런 장면 같은 것만 생각날 때도 있다.

비빔밥을 앞에 놓고는, 비비기도 쉽고 먹기도 편하다면서 비비는 시작부터 마지막 한입까지 젓가락만 쓰는 친구가 생각난다.
국물에 말은 국수를 먹을라치면, 밀가루로 된 국수 가락만 건져먹고 야채와 국물은 고스란히 남기는 얌체 같은 사람이 그의 얌체 같은 미소와 함께 떠올라, 나도 따라 속으로 한번 웃어보는 때가 있다.
마켓에서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살 때는, 좁은 베란다에서 여러 가지 야채를 기르던 춘천 사는 어떤 분이 보고 싶고, 커피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인스턴트 커피를 싸가지고 다니며 때때로 입에 넣곤 하던 친구가 그리워 지기도 한다.

서울과 밴쿠버에서 따로 살기 시작한 처음 무렵에는 식탁에 앉을 때마다 혼자 밥 먹을 남편이 많이 안쓰러웠다.
같이 사는 20년 동안 한번도 제 손으로 뭔가를 끓이는걸 본적이 없었던 지라, 귀찮아서 굶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우리끼리만 맛있는걸 먹는 것이 괜스레 미안했다.
그런데 웬걸, 3달쯤 후에 다니러 온 남편은 수척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뽀얀 얼굴로 나타나 잠시 억울한 마음이 들게 했다.
혼자 사는 남자를 불쌍히 여긴 이 집 저 집에서 음식 해다 주고, 같이 밥 먹자고 불러주는 사람들 덕분에, 거기다가 지금 먹으면 언제 맛있는걸 먹게 될지 몰라서, 기회가 될 때 마다 많이 먹는 버릇이 생겼다는 남편의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어쨌든 나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이 좋다.
정열적인 식욕을 가진 사람이 자유로운 발상을 하고, 생각도 탄력 있게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편식이 심한 사람은 사람을 사귈 때도 까다롭고, 제법 깐깐한 성격인 경우를 주위에서 여럿 봤다.
그래서 맑은 장국을 좋아하는 사람과 구수하고 진한 국물을 즐기는 사람은 그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분명히 다르리라 믿는다.

음식과 사람을 연결시켜 떠올리고, 즐기는 음식 따라 성격까지도 가늠해보는 버릇을 가진 나는, 스스로도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중학교 때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to 부정사를 가르치면서 live to eat 과 eat to live 를 예를 들어 설명 하신 일이 있다.
live to eat 하는 사람? 하고 물으시는 순간 ‘저요’ 하면서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든 기억이 난다.
평소 내 수업 태도로 보아 흔치 않은 장면 이었는데, 먹는 것만큼은 언제나 씩씩하게 챙기는 ‘음식 밝힘 증’이 일찌감치 그때부터 나타났던 셈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집 생활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코 식생활 비다.
식생활 비의 비중이 높은 것은 엥겔계수가 높은 것이고, 저소득층 일수록 엥겔계수가 높다고 배웠는데 그러거나 저러거나 의, 식, 주 중에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 생각은 여전하다.

요리하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가끔 맛있는걸 찾아 나서기도 하고, 싱싱한 재료를 듬뿍 넣어 알뜰살뜰한 정성까지 보태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양쪽 다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차원을 넘어 서로를 단단하게 묶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탁은 서로간의 사랑을 느끼고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또 마음에 맞는 친구와 통하는 얘기를 하면서 깔깔거리며 하는 식사는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모른다.

새로 이사온 이웃집과도 부침개 한 접시 나눠 먹으면 금방 친해지고, 할말 없고 어색한 사이에도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나면 얘기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정성스런 음식 한 접시가 상처 받은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되는 때도 있다.
그래서 ‘한솥밥에 정든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은 참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간단한 음식이라도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정성을 더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몇 일 전에는 밥을 그릇에 담다 말고 어머니 생각을 했다.
특별한 음식도 아니고 매끼 먹는 밥을 푸다가 왜 어머니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와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밥상 맞은 편에 앉아 이것저것 숟가락에 얹어 주시고 맛난 반찬을 내 앞으로 밀어 주시고, 잘 먹는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 마지막 까지 시중을 들어 주시던 어머니가 어찌 그리 갑자기 보고 싶던지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젓갈을 듬뿍 넣고 담가 적당히 익힌 어머니의 돌산 갓김치, 과외 끝나고 집에 가는 도중에 먼지 나는 길에서 사먹던 오징어 튀김과 고구마 맛탕, 지리산에서 비 맞으며 삼키던 감자와 양파만 넣고 끓인 카레라이스, 강촌 문배마을 ‘장씨네’ 서 먹던 산채 비빔밥과 생 두부,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이라며 동생이 이른 새벽에 나가서 사왔던 바게뜨와 크로와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변 도로를 따라가다 책에 소개된 집을 기어코 찾아가서 먹었던 다채로운 해물 요리, 우리 동네 41가에서 파는 달콤한 치즈케익. 세상엔 정말 맛있는 음식이 많다.

이렇게 많은 음식 중에 오늘은 뭘 먹을까? 오늘 저녁엔 맑은 콩나물국을 끓여야겠다.
맑은 국물만큼이나 깨끗한 성품을 가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신정효(세계한인문학가협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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