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특별기고] 쿠오모 주지사와 호스토스CC

New York

2015.07.24 17:1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이 길 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지난주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네일살롱 환경개선 법안'에 서명했다. 동포사회와 밀접한 업계에서 임금착취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단속하는 법이다. 뉴욕의 대표적 저소득층 밀집지역 사우스브롱스 소재 호스토스커뮤니티칼리지(Hostos Community College)를 찾아가 서명식을 가졌다.

20년 전 나는 호스토스의 역사학 강사였다. 그곳은 지금도 이중언어 대학이다. 많은 강좌가 영어와 스페인어로 진행된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아울러 스페인어로 전공과목을 택할 수 있다. 영어가 부족하다고 학문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교육철학을 반영한다. 나는 영어 수업이 가능한 학생들을 가르쳤다. 물론 학생의 절대다수가 히스패닉이다.

호스토스의 독특한 교육환경은 첫 시험을 치르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시험시간에 오지 않은 학생들이 날 찾아와 재시험을 요구하면서 제시한 이유가 특별했다.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했어요." "지금은 오버타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하느라 학교에 오지 못했습니다." 이런 학생도 있었다. "사촌 동생이 총에 맞았어요. 다행히 죽지 않았어요. 하지만 며칠 함께 병원에 있어야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운 학생들이 생겼다. 몇몇은 자신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며 까불어댔다. "아저씨" "빨리빨리" "일 이 삼 사…" 그리고 "새끼야"도 그들의 입에서 한국어랍시고 튀어나왔다. 한인 동포가 경영하는 점포에서 점심은 거의 매일 매콤하기로 유명한 컵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자랑인지 투정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똑 쏘는 맛은 좋았다고 했다.

강사 생활 첫해 참석한 졸업식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졸업생은 많지 않았는데 학교가 사람들로 넘쳐났다. 졸업생 한 명에 2~3대(代) 심지어 4대가 졸업식장에 온 경우도 있었다. 졸업생의 자녀 부모 그리고 몇몇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졸업생을 에워싸고 좋아했다. 학생이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최고"라고 나를 치켜세우면 이들 모두와 볼을 맞대고 포옹을 해야 했다. "무초 그라시아스 아미고." 나는 그 순간 그들의 친구가 됐다. 한 번에 친구가 대여섯 명 단위로 늘어나는 그 축제의 자리가 제대로 된 졸업식이 아니겠는가? 커뮤니티칼리지 졸업을 이렇게 기쁘게 생각하는 학생과 가족 또 커뮤니티가 있었다. 대학 졸업은 당연한 것 무슨 대단한 일이냐며 졸업식에 가지 않았던 교만이 부끄러웠다.

화가 치밀 때도 있었다. 보수 정치인들이 호스토스를 빗대어 자신을 띄우려 할 때가 그랬다. "이 정부는 여러분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호스토스커뮤니티칼리지입니다. 왜 스페인어로 공립대학에서 강의를 합니까? 자유진보주의자들의 전형적 예산 낭비일 뿐 아니라 영어 습득을 방해합니다. 미국에 왔으면 영어를 배우고 사용해야 합니다." 요즘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이들이 그때도 있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호스토스의 학생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풀타임 일을 하며 중남미 고향에 생활비를 보내면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미국을 더 잘 알기 위해 미국사를 공부하면서 부족한 영어 대신 스페인어를 활용하는 것뿐이었다. 쿠오모 주지사가 호스토스까지 찾아와 법안에 서명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뉴요커 아메리칸들을 일터에서 공정하게 대하자는 경고성 호소를 하고 싶어서였다.

97년 중상층 자녀들이 대부분인 한 작고 아름다운 사립대학으로 떠날 때 호스토스에서 나를 따랐던 '훌리오'는 학교 앞 행상에게서 샀을 법한 혁대를 포장도 하지 않고 돌돌 말아 내밀었다. "Hey man this is all I can afford for now(지금은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예요)"라며 겸연쩍어했다. 훌리오는 한인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일했던 한인 업소 주인 "아저씨"에게서 사람은 부지런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을 배웠다며 언젠가 자신도 그런 비즈니스맨이 되겠다고 했다. 그때는 더 큰 선물을 하겠노라 약속을 했었다. 지금도 동포 경영의 일터에서 많은 훌리오들이 한인들을 닮는 꿈을 꾸고 있길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