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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칼 샌드버그시인께 드리는 편지

Atlanta

2015.08.0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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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여러 표정을 사로잡은 사진과 마주 섰습니다. 우습지요? 동양여자인 독자를 만난 것이…. 소탈하게 웃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저도 웃음을 머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 있는 선생님이 사셨던 집 입구입니다. 나무와 숲과 호수가 운치있는 환경에 시적 분위기가 물씬합니다. 호수를 끼고 오솔길을 올라가며 이곳에서 22년을 사시고 세상을 떠나신 선생님의 체취를 곳곳에서 느낍니다. 언덕위의 하얀집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설렙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오래 전에 있었습니다. 동양의 작은 나라인 한국에서 처음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던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영어를 못하니 단어가 많은 글 보다는 짧은 글을 선호했습니다. 쉬운 단어들로 이어진 선생님의 시 ‘안개’를 사전을 뒤적여 번역하면서 뜻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안개는 작은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와/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항구와 도시를 굽어보다가/이윽고 어디론지 떠나간다’

그러나 짧은 시라 무조건 좋아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미국으로 이민오고 영어로 밥을 벌어 먹어야 해서 죽자고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어느날 선생님의 시를 다시 찬찬히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긴 시구절도 사전없이 읽고 해석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삶의 나이테가 둘러지면서 선생님의 시어에 함축된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솔직담백한 일상의 언어로 사회상과 이념을 시로 승화시킨 그 사이사이에 끼인 상념의 줄기에서 겸허한 삶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자연과 사람의 순리를 찾아 저도 자유롭게 내면을 들여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활이 고달플 때마다 시인들이 세상을 향해 열어 놓은 문을 통해서 위안과 즐거움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집은 동서남북으로 창이 많습니다. 언덕 아래의 들판은 눈이 부시도록 싱싱하고 멀리 구비구비 산등성이로 하얀 구름이 나른합니다. 호젓함 보다 더 큰 자유로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선생님이 세상에 발표한 작품의 3분의 1 이상을 이 집에서 쓰셨다”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으며 창밖으로 흩어진 눈길을 집안으로 모음니다. 주인잃은 낡은 타자기가 묵묵히 책상을 지킵니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빼곡하게 벽을 채운 선생님이 즐겨 읽으신 책들에는 선생님의 혼이 스며 있습니다. 창밖 새들의 노래는 마치 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시는 선생님의 음성같이 정겹습니다. 부드러운 리듬이 구슬처럼 흩어집니다. 언어가 비운 공간을 자유자재로 들락이며 영원을 노래하는 선생님의 정감을 나누어 받습니다.

오래전 ‘안개’ 시를 노란 스티커에 적어서 컴퓨터 테이블옆 벽에 붙여두고 틈틈이 눈길주었습니다. 남편과 어린 딸들이 슬쩍 읽는 것을 보면서 그들도 멈추고 생각하는 기회를 갖기를 바랬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시카고의 거리를 다니며 바람 많은 도시와 사람들을 사랑했던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흔적이 미시건 호숫가에 머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 들린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선생님의 사진이 선명한 카드를 발견하고 기뻤습니다. 그날 가게에 있던 카드를 모두 사니 횡재한 기분이었습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특별한 선물로 보냈습니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시가 그들의 삶에도 향기를 보태기를 바라면서요.

이웃에 버펄로들이 살았습니다. 지나며 그들을 볼 적마다 차를 세우고 선생님의 시 ‘버펄로 더스크’를 암송했습니다. 변하는 세월따라 모두가 변한다는 사실은 잊고 그저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길 좋아했습니다. 초원을 달리지 못하고 도시안에 갇힌 버펄로의 비애보다 저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야생동물과 공존하고 있음은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있음 이었습니다. 하지만 버펄로의 숫자들이 줄어들더니 어느날부터 한 마리의 버펄로가 외롭게 들판을 지켰습니다. 사슴들 사이를 서성이며 뒤뚱이던 그 한 마리도 요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풀이 우거진 들판을 보며 이제 선생님의 시를 읊으면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풀먹여 빳빳한 하얀 컬러를 붙인 검은색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부터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해가는 지금까지 저는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어갑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언젠가는 사라짐을 이제는 받아들입니다. 언덕아래 호수로 저의 편안한 미소가 떼구르르 굴러 내려갑니다. 그리고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서 산등성이를 구비구비 돌아온 바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름다운 시어를 실어온 바람이 시원합니다. 저의 삶을 풍요롭게 도와주신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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