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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궁즉통' 진리 확인한 남북회담

Los Angeles

2015.08.2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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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편집국장
다행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남과 북이 극한까지 치달으면서 전쟁 불안감이 엄습한 것과 지금 안도의 분위기는 극적 반전이다. 남북 당국자가 3일 6시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여 극적인 6개항 합의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국회담, 북한의 지뢰사건 유감 표명, 남한의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 북한 준전시 상태 해제, 추석 이산가족 상봉 추진, 민간교류 활성화 등 내용도 좋다. 북한의 유감 표명 및 남한의 대북확성기 철수는 양측이 절대로 관철시키고자 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둘 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

원상태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당국회담, 이산가족상봉, 민간교류 등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디딤돌까지 마련했다. 1과 1일 맞부딪쳐 0이 될 수도 있었던 위기 상황에서 3을 만들어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합의문을 이끌어낸 양쪽 회담 당사자들, 뜨거운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합의 직전까지 남과 북이 한 치 양보 없는 무력 시위로 치달을 때 '궁즉통(窮卽通)'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궁극까지 가다보면 통한다'는 말이다. 남북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며 궁극으로 달리고 있지만 결국은 그 궁극이 손을 잡게 만들 것이란 믿음이었다.

이 말은 주역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사물의 이치는 궁-변-통-구의 과정으로 변증법적 변화를 이뤄나간다는 의미다. 극한 상황에 부닥치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 이는 주역의 핵심 사상이다.

남과 북은 70년간 분단의 질곡에 갇힌 채 그 고통이 궁극에 다다르고 있다. 북한의 고통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남한도 북한과 돌파구를 뚫지 못하면 국가 성장엔진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순조로울 때는 변화에 대한 의지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 도달할 때 변화는 필연적이다. 이번에 남북이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한 것이 바로 '궁즉변'이다. 벼랑끝 궁극에서 변화를 택함으로써 6개항의 해결책이 나온 것이다.

남북이 합의사항을 잘 이행하면 서로 이해심이 높아지고 신뢰가 쌓이며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다. '변즉통'의 단계로 가는 것이다. 여기선 상대를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수다. 이 단계가 완성되면 평화로운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통즉구'로 접어드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평화가 지속되는 '통즉구'의 단계에 탐닉하다보면 썩고 안이해져서 다시 궁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평화 그 자체보다도 평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번 6개항 합의문 중에서 백미는 북한의 유감 내용이 담긴 2항이다.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하고, 남한은 사과를 하라고 하고…. 회담 처음부터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던 상황을 그런 문장으로 해소했다.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다. 각자 편하게 해석할 여지를 뒀다. 이것이 타협이다.

남북 간에 평화의 시기는 언제올까. 요원해 보이지만 궁-변-통-구의 순환원리에 주목하면 남북은 결국 화해.협력의 상생시대를 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이 끈질기게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것도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어서 앞으로 희망을 더 갖게 한다. 위기의 '궁(窮)'이 평화의 '구(久)'로 이어지는 것이 역사의 순리임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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