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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파이어 아일랜드

New York

2005.07.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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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국

소설가



오래 전 뉴욕으로 처음 이사를 와서 맨해튼에 나갔다가 엽서 몇장을 산 일이 있었다. 그 중에 롱아일랜드에 있는 '파이어 아일랜드(Fire Island)' 풍경이 담긴 엽서가 있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그 섬이 내가 살고 있는 스태튼아일랜드에서 한 시간이면 가는 곳이라는 걸 아는데 만도 꽤 시간이 걸렸고 또 실제로 그곳을 찾아 가는 데는 더욱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사 후 15년이 흐르고 난 지난 주에야 마침내 그 섬을 밟았으니까.

대서양에 맞서 롱아일랜드를 보호하듯 막아서고 있는 26마일의 긴 섬. 섬 안에는 동쪽 끝인 '스미스포인트 카운티파크'에서 서쪽 끝인 '로버트모시스 주립공원'을 제외하면 자동차를 위한 도로망이 없다. 양쪽에 위치한 두 공원은 각각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또 그곳에는 주차시설이 있다.

하지만 섬의 중간 중간에 산재한 인가에 사는 소수의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은 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몇십마일씩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페리나 혹은 자신들의 자가용 배를 이용한다. 사실 이 섬에도 고속도로를 놓자는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1964년 의회에서 섬을 자연 상태를 유지하도록 보호했다.

페리는 세 곳에서 떠서 각각 다른 지점으로 사람들을 데려다 준다. 나는 '세이빌'에서 탈 계획이었으나 길을 잘못 들어 '패초그'로 갔다. 운항 시간이 달라 잠시 기다린 후에 '와치힐'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페리터를 찾기가 쉽지 않아선지 그 과정이 귀찮아선지 사람들이 별로 없다.

배는 30분 동안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섬이 가까워지면서 왼쪽으로 늪지가 나타나는데 짠 물에서도 잘 자란 풀의 연둣빛이 푸른 물색과 어울려 참으로 아름답다. 그 지역이 1980년 연방의회에서 지정한 7마일에 걸친 '야생보호지역'이다.

배에서 내려 작은 언덕을 넘으면 대서양 앞에 끝없이 길게 누운 백사장과 만난다. 모래는 그야말로 뼈처럼 희다. 캠프 장비를 메고 온 사람들은 캠프장 쪽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나지막한 숲 사이로 이어진 보도를 따라 긴 산책길에 오른다. 마침 식사시간이라 사람들은 여기 저기 마련되어 있는 바비큐 그릴을 이용해 고기를 굽느라 바쁘다. 스낵바가 있기는 하지만 영 인기가 없다. 바비큐 그릴까지 있는데도 휴지 한 장 떨어진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이 섬의 이름이 '파이어 아일랜드'일까? 키가 낮은 관목들이 가을에 타는 듯이 붉게 물들어 얻게 된 낭만적인 이름인가 짐작하지만 그게 아니다. 누구도 확실히 그 연유를 알지 못하지만 몇가지 설은 있다. 파이어 아일랜드는 섬의 가장 왼쪽에 위치한 '파이어 인렛(fire inlet)'이라는 입구에서 유래한 명칭이라는데 대서양과 '사우스 베이(Great South Bay)'를 잇는 이 물길의 입구(통로)는 시대에 따라 그 숫자가 변했다고 한다. 5(Five)였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네덜란드어로 'Vier'인 4(Four)였던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실수로 이 'Five'나 'Vier'이 'Fire'로 둔갑했다는 설이다.

다른 설도 재미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지역에 살던 해적들이 밤마다 배를 유인하기 위해 해변에 불을 지펴 얻은 이름이란다. 그런가 하면 섬에 퍼져 있는 독풀(Poison Ivy)이 가을에 타는 듯이 붉게 물들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그 독풀의 가려움증이 하도 타는 듯이 심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해변에 있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안전요원들의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얼른 샤워장으로 뛰어 들어가 비를 피했다. 몇몇 사람들은 비를 핑계 삼아 재빨리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멀리 내리꽂히는 번개를 구경하며 맥주를 마신다. 토요일이긴 해도 참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생존이 치열한 도시 바로 옆에서.

늪지로 난 산책길을 잠시 걷다가 돌아오는 페리를 탔다. 길을 잘못 든 참에 아예 느긋하게 지방도로를 타고 오는데 먼 하늘에서 불꽃이 번지기 시작한다. 독립기념일이 꼭 일주일 지났는데 어느 마을에서 한번 더 구경거리를 제공하나보다. 불꽃은 점점 더 가까이 명멸하더니 바로 지척에서 터지고 있다. 순경들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복잡한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는 불꽃축제가 다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불꽃도 소음도 어둠에 묻히고 또 한차례의 소나기 끝으로 밤이 온다. 파이어 아일랜드의 흰 모래도 지금쯤은 어둠에 묻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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