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리더 박기량 “1루수는 제가 할래요”
첫 여자 연예인 야구단 공식 창단
아나운서 배지현 등 40명 모여
양승호 전 롯데감독 사령탑 맡아
"선수들 공에 맞아 얼굴 부어도 훈련"
배우 박지아 최고 구속 90km 넘어
"변화구·제구 키워 국가대표 도전"
여자 연예인들이 모여 가볍게 야구공을 던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낭패를 봤다. ‘쌩-’하고 날아온 공이 정확히 무릎을 때리고 튕겨나갔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자들이 얼마나 세게 던지겠어’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아픈 내색도 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경기 고양 훼릭스 야구장에 여자 연예인 40여 명이 모였다. 정식 야구 유니폼을 입은 연예인들이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는 모습은 어딘가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야구공을 향한 강렬한 눈빛은 프로야구 선수 못지않았다.
국내 최초로 여자 연예인 야구단이 생겼다. 연예인 야구·농구 대회를 주최하는 한스타미디어(회장 허남진)는 이날 ‘한스타 여자 연예인 야구단’ 공식 창단식을 했다. 프로야구 롯데 소속인 인기 치어리더 박기량(24), ‘야구 여신’으로 불리는 배지현(28)·정순주(30) 아나운서, 뮤지컬 배우 리사(35), 가수 길건(36)·미료(34), 개그우먼 황지현(25)·허민(29) 등 40명이 ‘진짜 야구’를 하겠다고 나섰다. 가수 조갑경(48)은 야구를 좋아하는 남편 홍서범(57)의 추천으로 플레잉코치 겸 선수로 등록했다. 전 농구 국가대표 천은숙(46)·이연화(32)는 제2의 인생을 꾸릴 스포츠로 야구를 선택했다. 여자 야구단이지만 코칭스태프는 남자들이 맡았다. 양승호(55) 전 롯데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사회인 야구 베테랑인 가수 김창렬(42), 배우 서지석(34) 등이 코치로 나섰다.
양승호 감독은 “처음에는 연예인들이 인기를 끌려고 야구를 이용하는 것 같아서 감독을 맡는 게 꺼려졌다. 그런데 공을 맞아 부은 얼굴로도 열정적으로 훈련을 해 깜짝 놀랐다. 처음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었는데 3개월 만에 병살 플레이도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됐다”고 말했다.
여자 연예인 야구단은 지난 7월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씩 훈련하고 있다. 개인 일정이 바쁘지만 30명 정도가 꾸준히 참석한다. 첫 훈련에서는 던진 공이 5m도 나가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거리(18.44m)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
모델처럼 마른 몸매(1m76㎝, 48㎏)로 유명한 박기량은 어깨 힘이 약한 탓인지 공이 쭉 뻗어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연체동물 같은 유연성으로 베이스에서 발을 떼지 않고 공을 다 잡아냈다. 박기량은 “그라운드 밖에서 야구를 보기만 하는 게 아쉬워 직접 해보기로 결심했다. 롯데 내야수 황재균이 ‘네가 정말 야구를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한 것이 자극이 됐다”며 “투수를 하고 싶었는데 막상 던져보니 정말 힘들었다. 대신 공을 잘 잡아내는 능력이 있으니 1루수를 맡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 연예인 야구단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선수들의 꿈은 크다. 박정철 단장은 “프로야구가 700만 관중을 돌파한 건 여자 관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들이 직접 야구를 하는 것에는 관심이 적다”며 “여자 연예인들이 열심히 야구하는 모습을 보고 여자 야구인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여자 사회인 야구인은 42개 팀에 820명 정도다. 남자 사회인 야구인이 2만 개 팀에 46만 명이나 되는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다.
여자 야구 국가대표를 꿈꾸는 선수도 있다. 서울액션스쿨 출신으로 액션연기를 많이 하는 배우 박지아(23)는 최고 구속이 시속 90㎞를 넘나든다. 국내 여자 야구계의 파이어볼러다. 박지아는 “어렸을 때 야구선수를 꿈꿨지만 여자 야구부가 없어 포기했다. 요즘 야구를 다시 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자 야구 월드컵에 출전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양 감독은 “대표팀에 뽑힐 만큼 실력이 걸출한 연예인이 3~4명 있다. 박지아는 수십 개씩 연속 투구가 가능하다. 전문 코치와 꾸준히 훈련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8월 부산 기장군에선 세계 여자 야구 월드컵이 열린다. 2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컵은 여자 야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다. 박지아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포심·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질을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박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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