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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동물의 사육제

황시내<작곡가>

그리스도교에서는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 40일간 사순절이라 불리는 금욕기간으로 들어가는데, 그 바로 직전이 사육제ㆍ카니발, 혹은 마르디 그라라 불리는 축제기간이다.

 각 나라와 지역마다 축제 기간은 다르다고 하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먹고 마시고, 최대한 즐기면서 다가올 금욕기간을 대비한다.
유럽에서는 쾰른ㆍ베니스 등이 사육제의 규모와 가장 행렬로 유명하고, 남미에서는 리오 데 자네이로가, 그리고 북미에서는 뉴올리언스가 가장 뛰어난 카니발로 인정받는다.

프랑스의 후기낭만주의 작곡가 카미유 생상(C.C. Saint-Saens 1835∼1921)이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 le carnaval des animaux> 는 두 대의 피아노와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ㆍ 콘트라베이스ㆍ피콜로ㆍ플루트ㆍ클라리넷ㆍ실로폰ㆍ첼레스타 혹은 글로켄슈필 등 소편성 관현악을 위한 총 14곡의 모음곡이다.

 생상은 1886년 겨울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처의 한 소도시에서 보내며 친구가 주최하는 사육제 음악회를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당시 생상은 일군의 평론가들로부터 상당한 혹평을 받고 침체기를 보내던 중이었는 데, 가볍고 유쾌하고 풍자적인 이 곡을 작곡함으로써 기분전환 겸 얄미운 평론가들에게 한 방 먹이는 즐거움까지 얻었다고 한다.

약 20분 정도 걸리는 연주시간 동안 청중은 사육제에 참가한 여러 동물들을 만나게 된다.
동물들은 카니발의 가장행렬이 지나가듯 줄을 지어 거리를 행진한다.
경쾌한 서주가 끝나면 맨 먼저 피아노 저음부에서 연주되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자왕의 행진'이 시작된다.
이어 피아노와 현악기로 묘사되는 '암탉과 수탉', '당나귀', 오펜바흐의 오페라 <천국과 지옥> 에 나오는 유명한 캉캉 춤을 마치 거대한 거북이가 걸어가듯 느리게 연주하는 '거북이', 콘트라베이스의 최저음을 이용해 그린 '코끼리', 소심하게 주위를 살피며 깡총깡총 뛰어가는 캥거루의 모습을 두 대의 피아노가 표현한 '캥거루' 등이 차례로 열을 지어 지나간다.

아르페지오로 일렁이는 물결 속에 수많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쳐다니는 '수족관'은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 의 중간곡으로 안성맞춤인 데, 이 곡을 듣다 보면 뿌옇고 커다란 수족관 속을 무표정한 얼굴로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듯 묘한 기분이 든다.
뒤이어 귀가 긴 동물 노새, 깊고 고요한 숲 속에서 클라리넷이 점잖게 지저귀는 '숲 속의 뻐꾸기', 피콜로와 플루트로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묘사한 '큰 새장'들이 열을 지어 거리를 행진한다.

다음 곡은 이 모음곡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동물과 동급 인간인 '피아니스트'. 생상은 하논 풍의 지루한 손가락 연습만을 여러 번 되풀이 하는 이 짧고 단순한 곡을 통해서 늘 무미건조한 음악만을 추구하는 음악가들 및 자신을 혹평한 비평가들을 신랄하게 비꼬았다.
제 12곡은 '화석'. 말라 비틀어진 화석이 왜 동물들의 행진에 참가하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생상 자신의 다른 곡과 여러 유명 가요의 멜로디들이 실로폰의 뼉다귀 부딪히는 소리와 한데 섞여 진행되는 이 특이한 곡은 <동물의 사육제> 에서 수위를 다툴만큼 매력적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 모음곡 중에서, 아니 어쩌면 생상의 모든 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백조'가 등장한다.
피아노의 잔잔한 물결 속에 우아하게 미끄러져 떠다니는 첼로의 선율이 꿈결처럼 아름다운 이 곡은 전 세계 첼로 연주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이상 동물들의 유쾌한 행진은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에서 패러디한 선율을 화려하게 변주시킨 마지막 피날레로 막을 내린다.

<동물의 사육제> 는 생상이 살아 있는 동안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고 작곡가 자신으로부터도 별로 큰 애정을 받지 못한 무게감 없는 작품이었으나(그가 죽기 전에는 출판되지도 못했다), 현재는 생상의 곡들 중 가장 인기있는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실제 음악적 완성도나 심오한 예술정신, 시대정신 등을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작곡가의 위트와 풍자를 즐긴다 생각하고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육제 정신이기도 하다.

지난 해 사육제 기간 나는 뉴올리언스 프렌치 쿼터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재즈와 크레올 요리, 멕시코만의 따뜻한 바람과 화려한 퍼레이드가 한 데 어울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이던 도시가 태풍 카트리나에 의해 폐허가 됐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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