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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서 시리즈]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San Francisco

2005.09.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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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우리나라 역대 왕조와 그 도읍을 시로 읊어 민족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엮은 책이 있다.

‘이십일도회고시’가 그것이다.
이 책은 유득공(1749∼?)이 단군 조선부터 고려때까지 역대 왕조의 21개 도읍지를 회고하면서 읊은 칠언절구 시를 모은 것이다.

그가 31세였던 정조 2년(1778)에 동국지지(東國地志)를 읽고 어린 아이들도 듣고 외울 수 있도록 마음을 써서 지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도읍이나 유적에 대한 주석이 자세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한시(漢詩)로 공부하는 우리나라 역사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우리나라의 역조 각 나라의 건국과 도읍에 관한 것을 중국과 우리의 역사서 및 지리서 등에서 인용하여 기술하였다.
이어 시를 수록하고 주석을 붙인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대체로 작품의 수는 각 왕조의 장단(長短)이나 규모를 따른 듯하다.
그러니까 왕조가 길었거나 규모가 방대한 왕조, 곧 신라나 고려에 대한 작품 수가 많다.
가장 먼저 수록된 단군조선을 보자. 대동강은 작은 서호(大同江是小西湖)/ 왕검성의 남쪽은 두루 녹음이 무성하네(王儉城南遍綠蕪)/ 만리 길 도산에 옥을 쥐고 오니(萬里塗山來執玉)/ 예쁜 아이가 오히려 해부루를 기억하네(佳兒尙憶解扶婁).
이 한편의 시가 다른 시를 대표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전체를 맛볼 수는 있다.
곧 다른 시들도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시각적이고 정서적인 문자를 구사하였다.
또 시가 끝나면 그 지역의 고사와 유적에 대해 상세한 주석을 주어 이해를 돋구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완성과 간행에는 재미있고 특이한 사실이 있다.
첫째는 수록된 시의 수가 다른 이본(異本)이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중국에서 간행되어 애송되었다는 점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처음 유득공이 이 책을 저술할 때의 시의 수는 현재 항간에 유통되는 책에 수록된 시보다 6편이 적은 37편이었고, 편성도 조금 달랐다.
물론 이 책은 간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초편본(初編本)이라는 이름이 적당하겠다.
이 초편본에 수록된 시는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모든 시에 비교적 상세한 주석이 있었다.
후일 저자가 재편(再編)하여 간행하려고 할 때 주석이 있는 초편본의 부본(副本)을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거듭 문헌을 고찰하고 이덕무의 도움도 받아 어렵게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재편본이다.
이 책은 국내외에서 수차례 간행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책들은 모두 재편본이다.

그런데 초편본은 존재사실만 확인될 뿐 보이지 않았다.
당대 저자가 찾지 못한 초편본이 세기도 지나 쉽게 발견되겠는가. 그런데 수년전에 중국의 국가도서관(전 북경도서관)에 초편본이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한 번 보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초편본을 볼 수 있는 행운은 다른 곳에서 왔다.
바로 미국의 버클리대학이었다.

표제(表題)는 ‘東國二十一都懷古詩’
선명한 먹색은 세월의 간격도 없애주었다.
초편본이었다.
그러니까 저자의 초편본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는 중국으로 흘러갔고, 국내에 남은 것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초편본과 재편본의 차이는 수록하고 있는 시의 수의 차이만 아니라 주석의 차이도 있다.
그리고 시문의 차이도 제법 보인다.
앞에서 본 단군조선의 시도 앞의 두 구는 다르다.
재편본에서는 "대동강물이 안개 젖은 무성한 녹음을 적시니(大同江水浸烟蕪)/ 왕검성의 봄은 그림과 같네(王儉春城似畵圖)"로 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간행된 연유는 1790년에 유득공이 연경에 들어갔을 때 수고본을 기윤(紀 )에게 주었고, 이것을 청나라의 문인 조지겸(趙之謙)이 학재총서(鶴齋叢書)에 편입하여 간행하였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이 시들을 좋아하여 고종 14년(1877)에 국내에서 목활자로 간행한 것을 번각(飜刻)하여 유통시키고, 심지어 한국으로 역수출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역대 왕조의 도읍지를 회고한 시로 우리민족의 주체의식을 고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일 저자가 재편할 때 이 책을 보았더라면 오늘날의 재편본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초편본의 존재를 알릴 수는 없을까. 또 미국과 중국 등 이역에만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오용섭 교수
(버클리대방문학자인천전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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