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도 반이 지났다. 아직 더위의 기세가 꺾이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한여름과는 확연하게 다른 가을 빛이 느껴진다. 핼로윈을 지내고 나면 곧 추수감사절이 돌아올 테고 어영부영 12월을 맞으면 곧 크리스마스. 2015년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한해를 마감하는 때라서일까, 요즘 이곳저곳에서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글을 많이 보내온다. 대부분이 감사와 내려놓음, 겸손과 배려 등에 관한 내용인데 그중 서울 사는 사촌동생이 카톡으로 보내준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며 정치인이었던 맹사성(孟思誠:1360-1438)과 무명선사와의 일화다. 고려 수문전제학 맹희도의 아들이며 고려말 명장 최영의 손녀 사위였던 맹사성은 황희, 윤회 등과 함께 세종 대에 재상을 지냈다. 26세 나이에 문과에 급제 춘추관검열이 되었고 이후 이조참판, 예조판서, 호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거치며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던 뛰어난 인물이다. 역사적으로 그는 인품이 훌륭해 존경을 받았던 인물로 전해지지만 집안 좋고 머리가 뛰어나 일찍 벼슬을 얻었던 그도 젊은 시절에는 자만심 가득한 기고만장한 청년이었다.
그가 파주의 어느 산골에 무명선사라는 훌륭한 스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맹사성이 삶의 좌우명을 간청하자 무명선사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하시라고 전했다. 죄짓지 말고 착한 일 많이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자 맹사성은 발끈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을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주느냐는 거였다.
그러자 노 선사는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이요, 백견이 불여일각(百見而 不如一覺)이며 백각이 불여일행(百覺而 不如一行)'이라는 충언으로 답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깨우침이 나으며, 백번 깨우침보다 한번 행함이 낫다는 말이다.
이에 머쓱해진 맹사성이 큰 절을 올린 후 나오려 하자 노승이 차 한잔을 권했다. 하더니 그의 찻잔 위로 주전자를 들어 물이 흘러넘치도록 차를 따르는 게 아닌가. 놀란 맹사성이 "스님, 차가 넘쳐 방바닥이 젖습니다"라며 주의를 환기시키자 무명선사는 "물이 넘쳐 방을 망치는 것은 보면서 작은 머리에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까?"라며 다시 한번 은근히 꾸짖었다고 한다.
부끄러움에 허둥지둥 방을 나서던 맹사성이 낮은 문틀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노승이 다시 한마디 던졌다. "고개를 낮게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참 마음에 와 닿는 글이다.
얼마 전 한국 방문 때의 일이다. 서울역에서 KTX 탑승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여행가방이 계단의 중간에 걸리는 바람에 당황했었다. 양손에는 짐이 들려있어 그야말로 앞으로 고꾸라질 듯 휘청이고 있는데 바로 뒤에 서 있는 청년 둘이 그 모습을 그냥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땅으로 내려올 때까지 진땀을 흘리며 애를 먹고 있는데 두 청년 중 어느 한 사람도 도와줄 태세가 전혀 아니었다. 후에 일행에게 이야기 했더니 '나도, 나도' 하면서 각자 서울에서 겪은 젊은이들의 싸늘한 방관에 관한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순간 두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아이들도 이런 상황에서 이런 태도를 보였을까. 하여간 아이들에게 이 무명선사와의 차 한잔 자리를 알선하고 싶었다. 그를 찾을 수 없다면, 그들보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엄마의 자격으로 딸들 잔에 차를 따라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백번의 깨달음보다 한 번의 행함이 귀한 법이라지만 깨달음이 있어야 행함도 있지 않을까. 그 깨달음을 주려는 노력은 우리 어른들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