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유명인사다. 20대부터 사업에 매달렸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며 허파에 바람도 잔뜩 들었다. 사업은 점점 규모를 키웠고, 성공의 단맛에 취했다. 재미를 붙인 A씨는 점점 목표를 올렸다. 100만 달러, 500만 달러, 1000만 달러….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40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누가 봐도 성공한 기업가인 그는 나이 60을 넘기며 고민에 젖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달려야 하나.
그는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남들은 다 나를 부러워 해. 사장님, 회장님 소리도 오래 들었어. 그런데 난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아. 평생을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고, 이루면 또 목표를 세우고, 그런 삶의 반복이었어. 물론 희열도 있었지. 그런데 허전해. 내 삶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인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내 인생이 송두리째 의심돼.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야. 이젠 차분하게 내 인생을 리셋할 거야."
A씨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리셋해 줄 나침반은 '가치'와 '뜻'이라고 했다. 목표를 위한 삶에서 뜻으로 사는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 A씨는 요즘 묵상을 즐긴다. 그리고 뜻으로 사는 삶의 기쁨과 충만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서독 광부 출신으로 대단한 부를 일군 한인사회 올드타이머 박형만씨가 사재의 절반인 5000만 달러를 쾌척해 자선복지재단을 만들겠다는 뉴스가 화제다. 박씨 역시 찌들게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서독 광부를 자원했고, 미국으로 이민해서도 악착같은 삶을 살았다. 그 역시 A씨와 같이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목표지향적인 삶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자린고비, 구두쇠 소리를 듣고 본인 말대로 '욕도 많이 먹었던' 그가 복지재단을 만들겠다며 한 말이 의미롭다.
"나와 내 가족만 보고 한눈 팔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60을 넘기니까 이웃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제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워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개인의 목표를 이루는 삶에서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뜻을 펴는 삶으로 인생을 클릭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목표로 살 것인가, 뜻으로 살 것인가. 중요한 화두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 수도 있고 두 가치를 함께 품고 갈 수도 있다. 문제는 현대 물질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목표 지향적인 삶에 대해서는 관심과 박수가 뒤따르지만, 뜻으로 사는 삶의 중요함을 말하는 이는 극히 적다는 점이다. A씨나 박씨처럼 인생 후반기에 접어 들어 비로소 뜻으로 사는 삶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 것도 물질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 때문이리라.
최고의 주역 전문가로 인정받는 김승호는 '돈보다 운을 벌어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만사에는 뜻이 있고 이유가 있다.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모든 게 시시하고 재미없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시켜주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다." 의미(뜻)가 없는 삶은 동물의 삶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승호의 해석을 빌리자면, 목표를 좇는 삶은 항상 피곤하고 허전하고 조마조마하고 시시한 반면, 뜻으로 사는 삶은 순간순간을 충만함으로 살 수 있다. 그러기에 뜻으로 사는 삶에 수명의 길고 짧음은 큰 의미가 없다.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빠진 경제 탓이 클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 [진맥 세상] 이원영 시사칼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