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시에 위치한 그레이스랜드는 ‘로클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식지않는 부와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관광명소다.
그레이스랜드 내에 있는 엘비스의 묘소.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하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미국의 대표가수다. 미남 가수인데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해 미국을 한때 떠들썩하게 했고 하늘을 찌를듯한 명성과 인기도 대단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마약 과다복용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죽은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남아있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줄로 안다.
그는 1935년 1월 8일 미시시피주의 방 2개짜리 작은집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어려서 형제를 잃는 등 아주 어렵게 살아왔다. 1948년 그가 13세때 멤피스시로 이사해 트럭운전수로 일하면서도 음악에 취미가 많았으며 늘 가수가 되는것이 꿈이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954년 우연한 기회에 드디어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타고난 기질로 처음에는 교회의 성가와 팝송, 컨트리뮤직 등 닥치는대로 불러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다 2년 뒤인 1956년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창때 엘비스의 인기는 마치 하늘이 놀라고 땅까지 뒤흔든다는 경천동지의 말같이 그 인기를 도저히 잠재울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생전에 출연한 영화 편수만도 33편이나 되며 수백번에 달하는 라이브 공연에다 레코드 판매량만도 10억장이 넘는다.
가는 곳마다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하늘을 찌를듯한 인기 속에서도 3년동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같은 군복무 자세는 일부 한국의 운동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이 군복무를 기피하기 위해 편법과 불법을 일삼다 적발되는 모습과 비교할때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
엘비스는 멤피스시의 14에이커 규모 '그레이스랜드'라는 집을 당시 10만2000달러에 매입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고 싶어하는 집이 백악관이며 그 다음이 바로 이 '그레이스랜드'란 것이다. '그레이스랜드'의 일년 방문객수만 해도 60~7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레이스랜드'의 주인은 지금껏 엘비스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로 되어있는데 최근 그 일부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년에 50만 달러가 넘게 드는 관리비때문에 1982년도 부터는 퍼블릭오픈만 하고 있다.
'그레이스랜드'에는 4채의 건물 안에 엘비스의 소장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주로 의상과 트로피 목걸이 반지 공연할때 찍은 사진들 또 그가 소유했던 22대의 자동차 중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1954년형 핑크 캐딜락 등이 있고 오토바이도 수대 전시돼 있다.
길 건너편 티켓 오피스 앞에는 그가 타고 다니던 비행기가 2대 있는데 그 중 한 대는 딸의 이름인 '리사 마리'라 명명됐다. 특이한 점은 비행기 내부 장식을 자기가 살고 있던 집 내부와 색깔까지 똑같게 꾸며 어디를 가도 집안에서 생활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엘비스가 죽고 난 뒤 처음에는 공원 묘지에 안치했었으나 극성 팬들에 의해 훼손될 것을 우려 '그레이스랜드' 안으로 이장했다.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몸짓으로 기타를 치면서 특이하고도 신들린 가창력으로 뭇사람을 매료시키던 때를 생각하면 30년이 지난 지금도 광적인 팬들이 '그레이스랜드' 담벼락에 빈틈없이 낙서를 하거나 기일 전날부터 길거리에 서서 밤을 꼬박 지새우며 그를 흠모할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럭운전수로 시작해 대스타의 입지에 올랐다 1977년 8월 16일 마흔 둘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명성은 영원히 남아있다.
멤피스시가 미국의 제일가는 음악도시로 태어나게 한 원동력도 그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레이스랜드'의 주소는 3734 Elvis Presley Blvd.로 240번과 55번 프리웨이 근방에 있으며 새해 첫날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매일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오픈하며 안내전화는 (800) 238-200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