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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쓸개 빠진' 나라가 될 것인가

Los Angeles

2015.10.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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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편집국장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위험하다. 남중국해의 산호초섬인 난사군도에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고 있고, 이를 두고 미국과 갈등이 첨예하게 치닫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난사군도는 중국영토이기 때문에 엄연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태평양 항로의 주요 길목인 난사군도를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고 미국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마찰은 이제 말싸움 수준에서 무력충돌 일보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미국은 지난 27일 전격적으로 인공섬 12해리(국제법상 영해 범위) 안쪽으로 구축함을 들여보냈고 중국은 미사일 훈련으로 대응했다.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이 만찬을 하면서 인공섬 문제로 서로 얼굴을 붉혔고, 만찬이 끝나자마자 화가 잔뜩난 오바마가 '구축함 진격'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민족 부흥'을 내세우고 있는 중국이 난사군도 영유권을 포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미국은 경제 패권에 이어 태평양 패권까지 상실할 수는 없다는 결기다.

이미 중국은 이 인공섬에 방어용 대포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고 있다. 앞으로 아슬아슬한 마찰이 잦아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인공섬을 둘러싼 미-중 마찰 속에서 한국은 매우 곤혹스럽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한쪽 편을 들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적으로 한국은 양자택일을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미-중의 패권 다툼이 전방위로 퍼진다면 적당한 '양다리 걸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는 박 대통령에게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는 데 실패하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인공섬에 대해 한국이 확실한 반대표시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에서 나온 입장은 "남중국해 문제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정도다. 곤혹스러운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세계적인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가진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중 사이에 심각한 분쟁이 생긴다면 미국은 동아시아에 있는 모든 외교관에게 주재국의 미국 지지를 요구하라는 지시를 내릴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철저한 중립에 서든지 국가의 '담력(膽力)'이 절실한 시점이다. '담'은 쓸개다. 한의학 고전에는 '정부조직에 비교하면 담은 치우침없는 올바른 관직과 같으니 결단(決斷)이 여기서 나온다'고 했다. 담력, 대담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의학에서 쓸개는 정신, 주체, 줏대, 용기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장기로 인지한다. 행동이 줏대가 없을 때 '쓸개 빠진 사람'이란 소리를 하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겁을 내고, 잠을 잘 못자고 하는 등의 정신적 측면의 질환은 쓸개를 치료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우리의 역사는 '담력 있는' 나라가 되지 못해 비굴과 사대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았고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왕조 교체기, 일제시대, 남북분단시대를 관통하며 소심하고 초라한 나라가 받아야 했던 아픔과 굴욕을 돌아보게 된다. 담력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남한이 힘을 키우는 길? 남과 북이 손잡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있을까.

미-중 초강대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담대(膽大)한' 통일조국의 모습을 그려보기만 해도 자긍심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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