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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LA온 '된장 전도사' 도완녀] 조상이 물려준 보석같은 음식

Los Angeles

2005.10.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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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예방에서부터 AIDS 바이러스 감염까지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비의 작물 ‘콩’으로 만드는 된장은  신경 세포 성장에 필수적인 필수지방산도 풍부하다. 그래서 도완녀는 자신있게 말한다. ‘요즘 아이들 된장 안 먹여서 문제가 많다니까요.’

치매 예방에서부터 AIDS 바이러스 감염까지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비의 작물 ‘콩’으로 만드는 된장은 신경 세포 성장에 필수적인 필수지방산도 풍부하다. 그래서 도완녀는 자신있게 말한다. ‘요즘 아이들 된장 안 먹여서 문제가 많다니까요.’

“도완녀씨가 오셨는데요”

그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오후 2시. 현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급히 내려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딱 멈추더니 풀먹인 명주옷을 곱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나온다.

순간 깜짝 놀랐다. 차림새로 보자면 연갈색 적삼에 가을색으로 물들인 머플러를 척 두른 모습이 분명 그 일텐데 표정은 그동안 잡지나 책 속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도 아니었고 나름대로 상상했던 그 모습도 전혀 아니었다.

산골에서 된장, 간장 담그는 여인이라기에 수더분한 아줌마를 연상했던가. 그런데 그는 그렇지가 않았다.

너무나 세련됐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보다 한 수 더 했던 놀라움은 사실 마음을 확 잡아끄는 당당함과 열정의 눈빛 때문이었다. 첫 눈에도 확 눈에 띄는.

이것이 바로 된장의 느낌인가. 아니 된장의 힘인 모양이다.

왜냐하면 일년 열두달 그는 된장을 만들기 위해 일을 하고 된장을 먹고 된장을 선전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느낌과 표정이 바로 된장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콩을 심고, 거두고, 메주를 만들어 띄우고 쑤고, 청국장과 간장 그리고 고추장을 담고.

된장 담그는 첼리스트.

그가 바로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서 콩심고 메주 쑤고, 된장을 담구며 우리의 맛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온 생을 바치고 있다는 그 유명한 여인이었다.

그는 마주 앉자마자 ‘된장이 그렇게 아름답게 표출되는지 몰랐다’는 찬사에 힘차게 동의한다.

“그렇다니까요. 된장은요, 우리가 아는 것 처럼 그렇게 촌스럽고 냄새 고약해 숨겨가며 먹어야 하는 요리가 아니예요. 우리 선조들로 부터 전해받은 최고의 보석같은 음식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끄러워하고 감추려한다니까요. 특히 외국에서 살고 계시는 한인들은 자꾸 냄새, 냄새 하는데 외국인들에게 진짜 된장 찌개 한그릇 대접해 보세요. 기절할 듯 좋아합니다. 제 말이 맞는 지 정말 한번 해보시라니까요.”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어떻게 된장을 선전해야 할지를 전해준다.

외국인과 아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친구가 그 남편을 데리고 왔기에 특히 대접할 것도 없고 해서 종지에 된장 한숟갈 듬뿍 넣고 호박 넣어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 내놓았다고 한다.

한 숟가락 맛본 이 남자. 너무 기막힌 맛에 아내를 보며 ‘당신은 그동안 왜 이 별미를 감춰두었느냐’고 나무람을 하더란다.

그의 감탄하는 표정을 본 후 그는 된장의 세계화를 위해 정말 발벗고 나설 결심을 자신있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요리 강습회를 위해 들고 왔다는 작은 유리병에 담긴 된장을 뚜껑 열어 자랑했다.

“자, 살짝 찍어 먹어봐요. 얼마나 맛있는데. 달지요? 된장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예요”

그가 이번에 LA에 온 것도 바로 이 ‘된장 홍보’의 한 걸음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20일 주주인터내셔널 주최로 된장을 이용한 별미식 등 각종 건강식 요리 강습회를 마련했는데 사실 몇명 온 자리에서 목청 돋우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많은 한인들이 찾아와 된장을 맛보고 그의 칭찬에 박수 쳐주고 해서 그를 기쁘게 했다.

"외국인들의 한식에 대한 반응도 커지고 있지만 요즘 우리 음식에 대한 한인들의 자긍심도 높아지고 있어요. 기쁜 일이지요."

그는 된장을 선전하는 일이라면 뉴욕도 가고 독일도 가고 프랑스도 간다. 오라는 곳이 있으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간다. 특히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있다하면 그는 망설이지 않고 간다. 우리의 보석인 '장'을 들고서.

그가 사는 정선은 이제 관광명소다. 그래서 일년에 수만여명이 찾아온다는데 일단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군대 사열 모습처럼 3200여개의 된장 항아리가 일렬로 도열돼 있는 장면에 압도당해 그만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들을 지른다고 한다.

이제 거의 잊혀져 가는 우리의 장 문화가 이렇게 산골에서 아름답게 꽃피우고 있다는데 대한 감격이겠고 한편으로는 이런 문화를 도외시 하고 사는 도시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근사하게 첼로 연주회도 연다. 된장 항아리 곁에서.

"된장과 첼로가 안어울릴 것 같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은근하고 고적하며 착 가라앉은 맛. 그 맛에 있어서 된장과 첼로는 기막힌 조화지요."

이렇게 문화와 전통과 맛과 멋이 어우러진 모습에 반한 사람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히 된장과 사랑에 빠져 도시로 돌아가면 자연스레 된장 전도사들이 된다. 물론 엄마들은 이때부터 아이들에게 피자대신 된장찌개를 주기 시작한다.

도완녀라는 여인이 유명해 진데는 된장이라는 명제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는 서울음대 졸업 졸업후 독일 유학을 다녀온 첼리스트로서 돈연이라는 법명의 스님과 결혼했다.

사실 된장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가난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 된장 만들기를 하고 있던 돈연스님 덕이다. 그리고 나이 마흔이 되어 아이 셋을 줄줄이 나았다. 문화의 첨병이랄 수 있는 이 뮤지션이 도시와 문화를 뒤로 하고 심심산골로 들어가 첼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곁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을 본 사람들은 우선 그녀를 다시 본다. 그리고 그녀가 먹는 음식 옷 말까지도 흥미있게 들여다보고 싶어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마치 첼로를 포기한 것 처럼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무대를 라이팅 비추는 곳에서 별과 달빛 비추는 곳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바람과 소나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쌓고 있는 산 그리고 시냇물과 바람. 이런 자연이라는 무대는 그에게 더 멋 있는 공연장이었는데 세상사람들에게는 이것도 이해할 수 없는 변신으로 비추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이래저래 그는 계속 유명해졌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그동안 그는 책도 수없이 냈다. 모두 된장과 자연식 그리고 평화로운 시골에서의 삶 가족의 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모두 베스트 셀러다. 이런 책들도 도완녀의 이름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유명해 지는 것은 저희 가족들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이런 알려짐을 통해 사람들에게 된장이 그리고 청국장과 간장 고추장이 얼마나 좋은 식품인지를 알릴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좋은 식품을 사랑하게 되면서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게 좋지요."

그는 자신이 된장 만들며 사는 곳에 언제라도 엄마들이 아이들 손잡고 찾아오면 좋겠다고 말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삶의 참가치를 가르쳐주고 전해주는 롤 모델의 역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엄마가 먼저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여하튼 그에게는 누구가 찾아오는 것도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도 모두 좋고 반가운 일이다. 된장만 알릴 수 있다면 말이다.



유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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