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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 화가의 유럽 미술기행

New York

2005.10.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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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백연희의 베를린에서 베니스까지



(1)베를린

"생명의 존엄성.뛰어난 창조력

감히 사진찍기가 두려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화가 백연희씨가 지난 9월 말 10일간 베를린과 파리 취리히를 거쳐 베니스 비엔날레를 둘러보고 왔다. 백씨의 유럽미술 기행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여름이 그 열기를 차츰 감추며 가을 들어서기 전 9월 말 열혈 미술가들 예술 애호가와 음악가 10명으로 구성된 일행은 미술관과 고적 리고 건축물을 찾아갔다. 베를린에서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근대 미술의 역사를 더듬어간다.

여정의 첫날 베를린에 도착한 일행은 버스를 타고 홀로코스트 광장에 내렸다. 피터 아이젠만의 디자인으로 된 광장엔 유대의 죽음의 상징이 가득 채워져있다.

첫 인상엔 육중한 돌층계의 광장처럼 보이고 현대 미술의 거장 솔 루이트의 그림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하나의 직육면체의 돌덩이들은 높이가 각기 다른 거대한 묘비이자 군인들의 행진처럼 줄 맞춰서 서있다.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무명 묘비들의 행렬은 그 사이사이가 골목처럼 되어있어 우리가 걸어오기를 요구하는 듯이 보였다.

깊이 걸어갈수록 2.3층의 건물 높이로 높아지는 돌들은 그 안에 잠겨진 독일의 역사와 견고한 민족성 뛰어난 예술성을 장엄하게 보여주었다. 땅거미가 내리는데 일행은 죽어간 생명의 존엄성과 예술가의 뛰어난 창조력 앞에서 감히 카메라를 들기가 송구스러웠다.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은 새롭고 근대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우리 그룹이 찾아 갈 만한 곳이었다. 근대 미술 거장들의 최고 작품들을 모아놓은 이 미술관은 밖에서 보면 나무가 우거진 정원 속에 우아한 흰 건물이 고풍을 띠고 서 있지만 단 플라빈의 수직형 네온 불빛이 고전적 창문에 걸려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

늘 감명을 주는 독일 작가 엔젤렘 카이퍼 조셉 보이스 리처드 롱의 작품 외에도 이번에 특별 전시 중인 버나드 힐라 바커의 흑백 사진들은 대단한 것이었다. 대부분 등대.건물.공장.기계 등을 소재로 같은 사이즈의 기하학적 이미지가 방마다 계속된다.

여기에 반복되는 흑백의 대조와 조형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동안 마치 바흐 작곡법의 반복과 변주곡을 감상하듯 분명한 피할 길 없는 메시지가 우리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몇년 전 퀼른 아트페어에 왔을 때에 느꼈던 인상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늦가을의 회색빛 하늘이 오래된 거리 위에 가까이 내려있고 사람마다 두꺼운 반코트에 목도리를 하고 부지런히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

거리는 넓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회색빛 건물들이 늘어서고 가끔 상점도 보이지만 눈에 띄는 간판이나 불빛이 화려하지 않아서 모두 휴일인 것처럼 보였다. 나무가 많아 도시는 풍요한 데 버스 안이나 지하철역에서 웃고 떠들고 밀려다니는 젊은이들도 안 보이고 한편 성낸 얼굴도 없으니 참 다르기도 하다. 여자들 옷차림에 유행도 없고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속도가 빠르고 감정 표현이 많은 한국과 뉴욕에 익숙한 나에게는 이 멋없는 생활방법이 지루하게도 느껴졌다.

그런데도 이 독일 땅은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를 생산했지 않는가. 특히 독일의 표현주의와 근대 미술은 세상을 놀래게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말한 것처럼 "독일 사람은 존경할 수는 있지만 좋아할 수는 없고 이태리 사람은 좋아는 하지만 존경할 수는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튿날 저녁은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듣는 날이다. 기대에 찬 일행은 각자 자기의 작은 가방 속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골라 입고 포츠담 광장을 향했다.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 위에 세워진 초근대식 건물의 집합지이다. 건축가 헬무트 존에 의해 지어진 소니 회사 컴플렉스는 103미터 높이의 타워와 대규모 텐트 모양의 지붕이 그 옆 크라이슬러 빌딩으로 뻗어 나갔다. 내부는 새로운 디자인의 여러 상점들이 홍수처럼 광장을 덮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당은 1960년대 한스 샤로운이 건축한 황금빛 건물. 중복되는 지붕의 곡선이 동양적이라고나 할까. 여인의 치맛자락 움직임 같다고 할까. 그 보다는 지휘자의 지휘봉이 움직이는 선을 상징하는듯 춤추는 지붕이 큰 특징인듯 했다.

그 날은 연주를 듣는 것 보다는 뮤직홀 실내가 얼마나 미학적으로 디자인 됐는지를 감탄하면서 청각보다는 시각이 호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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