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한 여성 앵커에 시선이 꽂혔다. 귀걸이가 한마디로 망측해서다. 신체의 특정 부위를 본따 만든 것이어서 그 꼴불견이란. 한편으론 얼마나 튀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딱한 생각도 들어 프로그램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용이 귀걸이 못지 않게 황당했다. '하드 워커(hard worker)'란 말을 함부로 입에 담으면 안 된다며 시청자들을 점잖게 꾸짖는 게 아닌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쏟는데 비난받아 마땅하다니….
앵커의 이름은 멀리사 해리스-페리. 얼핏 혼혈처럼 보였다. 그의 주장은 이랬다. 미련하게 일만 하는 '하드 워커'는 흑인 노예나 진배없다고. 엊그제 연방하원의장에 선출된 폴 라이언(공화당)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말을 늘어놓더니만 급기야 그를 '노예' 취급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방송국 측은 징계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다.
알려진대로 라이언 의장은 어렸을 적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돌보고 밤엔 맥도널드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는 등 치열한 삶을 살았다. 가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워싱턴에선 보기 드문 '하드 워커' 정치인이다. 미국의 권력서열 3위라는 화려한 명성과 함께.
그저 그런 학교를 나온 라이언 의장과는 달리 앵커는 명문대학 출신의 자부심이 강한 여성이다. 오바마엔 입에 침이 마를 만큼 칭찬을 해대지만 공화당 인사들에겐 가끔 저주성 멘트를 날려 논란을 빚기도 한다.
듣기 거북한 건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라이언을 은근히 비아냥대는 대목이다. 축하를 해줘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그걸 약점이라고 꼬투리 잡는 그 비열함이란.
실제로 미국엔 '개천' 출신들만을 모아 '용'으로 키우는 대학이 있다. 이름하여 '하드 워크 유(Hard Work U)'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대학'이라고 할까.
설립자는 장로교 선교사다. 그와 관련해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날 그는 다람쥐 사냥을 하고 있는 소년을 만났다. "얘야, 학교에 안 가고 뭐하니." 소년의 말이 선교사의 가슴을 세차게 두들겼다. "가족의 생계가 급한데 학교는 뭔 학교…."
이에 충격을 받은 선교사는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세웠다. 처음엔 고등학교로 시작해 나중엔 4년제 대학으로 발전시켜 두루 인재들을 모았다.
수업료와 기숙사비는 공짜. 그런데 저소득층에게만 지원자격이 주어진다. 조건은 1주일에 최소 15시간 일을 해야한다는 것. 학기 중엔 누구나 도서관과 식당 등 캠퍼스 내 시설이나 인근 소매 업소에서 일을 한다. 방학 때는 주 40시간으로 늘어난다.
공부하랴, 일하랴. 한눈 팔 시간이 없을 터. 대학 4년 동안 '하드 워크'로 단련되다보니 대부분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다. 졸업생 가운데는 별을 넷씩이나 단 장군만도 2명에 달한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도 줄을 잇고. '개천' 출신을 강훈련시켜 '용'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이 대학의 원래 이름은 '칼리지 오브 디 오작스(College of the Ozarks)'다. 미주리주의 오작스 지역에 자리잡았다고 해서다. 지난 70년대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 대학을 '하드 워크 유'라는 별명을 붙여 소개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세상의 젊은 청춘들이여. 결코 절망하지 말지어다. 용은 개천에서 난다고 하였느니. 언젠가는 유행가 노랫말처럼 쨍하고 해뜰 날이 반드시 온다. 지지리도 궁핍하게 살았던 라이언이 훗날 하원의장이 될줄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