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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숙의 미지여행-아프리카(상)] 동트는 초원 풍경 '평화의 별천지'

Los Angeles

2005.11.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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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복판서 유럽식 아침 '백미'
문명이 낮은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 세종대왕의 업적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비교적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케냐 역시 나라글이 없어 최다 수 원주민어인 스와힐리어를 발음나오는대로 알파벳으로 표기하여 공용으로 쓰고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널리 알려진 카렉 블릭센 기념 박물관의 모습.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널리 알려진 카렉 블릭센 기념 박물관의 모습.

장기간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영향으로 일상 문화는 영국풍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식당이나 호텔에 들어서면 마치 영국에 도착한 듯하다. 역시 빈부의 차가 극심하여 치안이 몹시 불안한 실정이라 대낮에도 긴장하며 다녀야 한다.



길가에는 맨발로 구걸하는 아이들과 비닐봉지에 본드를 넣고 코를 대고 있는 아이들이 슬픈 표정으로 오가는 행인들과 눈을 맞추려해 마음이 우울해진다. 어두워지면 경찰복을 입은 경찰이 차를 세워도 무조건 줄행랑을 쳐야 한다는 주의를 들을 정도이다.

그러나 날씨 하나만은 기가 막히다. 적도에 위치하여 무척 더우리라는 일반 상식을 뒤엎는 선선한 초가을 날씨 그대로인데다 우기도 적당히 있어 캘리포니아 기후 못지 않으며 눈에 익은 꽃들이 만발하는 곳이다.

케냐에 가기 위해 늦은 밤비행기로 먼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니 다음 날 정오가 다 되었다. 반 나절을 빈둥거린 후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하니 다시 캄캄한 밤이었다. 사전 지식을 너무 상세히 들은지라 잔뜩 긴장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예방접종 확인까지 마친 후에도 편치가 않았다. 마중나온 친구의 얼굴을 보니 그제야 안도감과 반가움에 해후를 즐길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찍 'OUT OF AFRICA'로 널리 알려진 카렌을 만나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덴마크 정부의 도움으로 세워진 카렌박물관은 그 곳 주민의 사랑을 받았던 카렌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살던 집에 유물과 유품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1962년 77세로 타계한 그녀가 케냐 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여 당시 유부남을 사랑했던 불륜까지도 미화 될만큼 온통 카렌 일색이다. 카렌 로드카렌 클럽 카렌 스쿨 병원 등등.

나이로비 공항에서 비행기로 탄자니아 국경 쪽으로 두시간을 날아 가면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 흙먼지 속으로 끝없이 펼쳐 지는 사파리(스와힐리어로 여행이란 뜻)를 만나게 된다. 그 벌판 전체가 활주로로 사용되는데 코를 막을 정도의 흙먼지 바람을 마시고 내리면 사파리 트럭이 달려와서 승객을 지정된 호텔(방갈로라 해야 옳다)로 태워다 내려 준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내에 지은 호텔이라 방 하나하나가 모두 초원을 향하고 있으니 동물들과 함께 있는 셈이다. 갑자기 지금까지 살아 온 세계에서 이탈되어 외계로 온 듯 눈 앞에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가 가득 밀려오는 듯한 그득함을 맛보게 된다.

사파리 관광상품의 하나인 풍선을 타고 드넓은 평원을 나직이 날아가면 일출과 함께 기지개켜는 동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스를 태워 날아가는 풍선으로 한시간 가량 날아 탄자니아 국경까지 이동하다가 하선 명령과 함께 바구니를 탈출하면 끝없는 사바나 한 복판에 멋진 아침식사가 준비 되어 있다. 하얀 식탁보를 주름 잡아 반듯하게 깐 테이블에는 유럽식 아침식사와 함께 흰 모자와 나비 넥타이를 맨 웨이터들이 샴페인과 커피를 따라 주며 환영 인사를 한다. 옆으로 흐르는 강물에서는 하마가 큰 눈을 꿈뻑거리며 얼굴만 내밀고 있고 갓 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은 궁굼한 듯 주위를 서성거린다. 졸지에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사바나에서의 아침은 마사이마라 여행의 백미이다.

탄자니아국경 표지판이 자그마하게 벌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으나 누구하나 막는 사람없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양국을 넘나든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공원과 케냐의 마사이마라공원은 자그마한 비석 크기의 돌맹이 하나로 구분되어 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암보셀리공원으로 가는 도중 우리나라의 봉이 김선달을 능가하는 물장수를 만났다. 적도를 통과하는 지점에서 차를 멈추니 물을 반쯤 채운 양동이를 든 한 남자가 나타나 자칭 물리학 박사라고 소개를 하면서 진기한 실험을 해 보이겠다고 한다. 양동이에 담긴 물을 작은 주전자에 담아 깔대기에 붓는 것이다. 적도 남쪽에서 부으면 왼쪽으로 북쪽에서 부으면 오른쪽으로 물의 방향이 바뀌는 현상을 보여 주고 자기 사인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주면서 2달러를 요구한다.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밑천이라고는 2달러도 안되는 양동이와 깔대기 하나로 기상천외의 장사판을 벌리고 있다. 사냥과 농사밖에 모르는 줄 알았더니 그런 장사술이 있을 줄이야.

적도에서 200마일 남쪽에 위치한 암보셀리공원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한 '올투가 라지'에 짐을 풀었다.

킬리만자로산을 눈 앞에 두고 위치한 유명한 산장으로 원숭이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인사를 하고 얼룩말떼가 기웃거리는 사파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산장 주위를 둘러싼 나무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고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 다니는 별천지에 다시 마음을 놓게 된다.

동트기 전에 가장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다 하여 다시 사파리 트럭으로 한 시간동안 돌아본 후 킬리만자로를 기다렸다.

무척 수줍음을 타는 산이라 그 자태를 보기가 어렵다는 소문대로 살짝 내민 눈 덮힌 봉우리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지구의 온난화로 10년후엔 눈을 볼 수 없으리라는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를 그나마 눈도장이라도 찍으니 다행이었다.

오후에 다시 사파리 구경을 다니다 사자떼가 얼룩말을 공격하는 순간을 잡았다. 작전 미스와 간발의 차이로 아쉽게도(?) 실패하고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암사자 네 마리가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인간의 잔악함이 나도 모르게 표출 되는가 싶다. 느긋한 숫사자는 그 와중에도 요동치 않고 괘씸하게 먼산 바라보기만 한다. 이어서 수십마리의 코끼리떼가 이동하는 장면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바로 한 발자국 앞을 리더인 대장 코끼리를 선두로 중간에 새끼들을 끼워 넣고 묵묵히 따라 가는 긴 행렬은 장엄했다.

뒤로 처지는 새끼를 어미가 코로 잠시 들어 앞으로 놓아 주기를 여러차례 하여 무사히 행렬을 이끌어 간다. 어미가 끌어가는 사자무리와 아비가 리더가 되는 코끼리사회. 동물의 세계도 이렇게 다양함을 보여 주는데 이 세상에 이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다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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