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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천재 아닌 악바리로 기억되고 싶다"

Los Angeles

2015.11.0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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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풍운아' 은퇴 인터뷰
JTBC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
24년 축구인생 난 70점짜리 선수
타의로 유니폼 벗고 싶진 않아 결심
안정환·이영표 형과 이젠 라이벌
잘 준비해 해설자로는 1등 도전


'풍운아' 이천수(34·인천)가 축구화를 벗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지 24년 만이다. 이천수는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발목 부상 탓에 지난 9월12일 수원전 이후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던 이천수는 "스스로 아쉽지 않을 때 떠나고 싶었다. 그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했다"며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이천수는 평범한 축구선수가 아니었다. 경기 전부터 주눅이 들었던 선배들과 달리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때로는 당당함이 지나칠 정도로 톡톡 튀는 선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4강 신화'의 주축 멤버였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토고전에서는 그림 같은 프리킥 골로 온 국민을 들썩이게 했다. 그러나 튀는 언변과 행동으로 구설수에도 자주 올랐다.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돌이켜본 이천수는 "천재가 아닌 악바리처럼 뛴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5일 그를 서울 상암동 JTBC 본사에서 만났다.

-갑작스런 은퇴 선언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함께 뛴 형들을 보면서 어떻게 은퇴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봤다. 타의에 의한 은퇴보다는 스스로 아쉽지 않을 때, 박수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떠나고 싶었다. 은퇴에 대해 생각해본 건 올 시즌 전반기를 마치고 난 뒤였다. 구단에서는 '더 뛰라'고 했지만 욕심부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은퇴를 결정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었나.

"주변 동료들뿐 아니라 은사님들께도 말씀드리지 못했다. 아마 많은 스승님들이 화내실 것 같다(웃음). 부모님과 아내가 내게 힘이 됐다. 특히 아내는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열심히 살자'고 얘기해줘서 큰힘을 얻었다. 딸 주은이 생각도 많이 했다. 작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주은이가 나를 축구선수라고 알 때까지 뛰고 싶다'고 올린 적이 있는데 최근에서야 주은이가 내가 축구선수인 걸 안다. 앞으로 은퇴하고 나면 주은이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서 더 뛰어다녀야 한다."

키 1m74cm인 이천수는 체격이 작은 편이다.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과 근성으로 약점을 넘어섰다. 담력과 근성을 키우기 위해 야간에 집 근처 공동묘지를 오르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프리킥을 잘하고 싶어 훈련이 끝나면 혼자 운동장에 남아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의 킥을 따라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키가 작다는 말이 가장 힘들었다. 그걸 넘어서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집에서 부평고까지 6㎞ 되는 거리를 매일 새벽 뛰어다녔다. 실력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작아서 안 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고교 3학년 때였던 1999년, 모교(부평고)의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던 이천수가 전국구 스타로 뜬 건 2000년 1월이었다. 일본에서 열린 19세 이하(U-19) 신년축구대회에서 파라과이·이탈리아를 상대로 화려한 발재간을 앞세워 2경기 연속 골을 뽑아냈다. 한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끈 것도 그였다. 한국 축구가 간절히 바랐던 기술과 스피드, 결정력을 갖춘 이천수의 등장에 '밀레니엄 특급'이라는 화려한 별명이 나왔다. 이천수는 "밀레니엄이란 말은 '2000년'과 내 이름의 '이천'이 맞물려 나온 수식어였다. 그래서 '밀레니엄(1000년) 특급'이라는 별칭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튄다"며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거스 히딩크(69) 감독 앞에서도 그는 주눅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실력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멤버에 뽑혔다. 오른발잡이였지만 히딩크 감독이 자신을 왼쪽 공격수로 꾸준하게 기용하자 왼발잡이로 새롭게 태어난 결과였다. 생애 두 번째 월드컵이었던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선 이을용이 차려던 프리킥을 "내가 한번 차보겠다"며 나서서 보기좋게 골을 터뜨렸다.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2-0으로 져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엔 그라운드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말했다.

글=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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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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