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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Story] 종이 냄새 맡으며 읽는 '행복'

Los Angeles

2015.11.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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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할 때 처음 가는 곳은 항상 서점이다.

얼마 전 고국 나들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보문고를 들어서자 확 풍겨오는 종이 냄새에 취해 코너마다 기웃대며 코끝이 찡했다.

돌아올 때는 문인들이 건네준 책과 서점에서 구입한 책들로 가방이 가득 채워져 마음이 풍요로웠고 집에 와 표지마다 특색있는 디자인의 책들을 정리하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책장 앞에서 신이 나 콧노래를 흥얼대며 향긋한 종이 냄새를 맡아본다.

학창시절 늦도록 책을 읽다 얼굴 위에 책을 덮고 잠이 드는 순간 종이 냄새는 수면제였다.

책장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순간 다음 장을 읽을 기대감으로 늘 설렌다. 전자책 독자가 증가한다 해도 깊이 있는 내용을 선호하는 독자는 여전히 종이책을 손에 든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며 느끼는 종이책의 묵직함과 그 냄새, 책에 밑줄 쳐가며 메모할 때의 그 충족감, 좋은 책을 주고 받으며 느끼는 충만한 기쁨은 종이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미국인 중 89%가 1년에 최소 종이책 한 권은 읽는다고 한다. 반면 전자책을 읽는 수는 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침마다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한글 신문을 들고올 때는 하루 중 제일 먼저 만나는 친구 같아 언제나 반갑다. 신문을 펼쳐들면서부터 확 풍겨오는 종이 냄새를 맡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제작하는 사람에게도, 집으로 배달해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다양하고 새로운 정보와 뉴스, 칼럼과 각종 타운 소식 등 읽을거리가 풍부한 신문은 하루 일과의 시작을 상쾌하게 열어준다.

한글로 된 종이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민자로 큰 행복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종이책과 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종이 냄새를 즐기기 위해 가끔 차곡차곡 모아둔 누렇게 바랜 봉투 속, 고운 낙엽 같은 편지를 꺼내 읽어 본다.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흥건하다.

종이 위에 쓰여진 마음을 읽으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우정이 싹트고 사랑이 익어 한 생애의 고운 무늬를 만들었음이 느껴진다. 흩어져 없어지는 바람 같은 문자나 카톡은 진정한 사람의 향기가 없는 쓸쓸함이 느껴져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은 오래 사랑을 나눈 연인과도 '안녕'이라는 두 글자를 스마트폰 문자로 보내며 이별하는 세상이다.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인생관이 바뀌면서 21세기 삶의 형태가 크게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 세대의 정서로는 매우 안타깝다.

바람이라면 닫혔던 서점 문이 다시 열리고, 이른 아침 신문을 기다리는 가정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종이 책을 읽으며 올해가 가기 전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에게 정다운 모국어로 편지를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승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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