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개봉한 영화 '굿 다이노(The Good Dinosaur)'는 꼬마 공룡 알로의 모험과 성장이 재미나고도 감동적으로 펼쳐진 걸작 애니메이션이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웃음과 따스한 메시지로 이번 추수감사절 연휴 박스오피스 1위를 예약한 것은 물론, 내년 초 열릴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애니메이션 부문 강력한 수상 후보로까지 점쳐지고 있다. '굿 다이노'를 통해 감독 데뷔 신고식을 치른 피터 손(38·한국명 태윤) 감독이 빼어난 감각과 연출력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물론이다. 애니메이션의 명가로 유명한 픽사에서 활약 중인 한인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는 많지만, 그 실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감독직까지 오른 것은 피터 손이 처음이다. 영화 개봉 열흘 전이었던 지난 15일 할리우드 한 호텔에서 피터 손 감독을 만나 '굿 다이노'의 제작기를 들었다.
- '굿 다이노'는 6년간의 긴 작업 기간이 걸린 프로젝트다. 중간에 감독이 교체되는 등 혼란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맡았다가 하차한 작품의 감독직을 수락하기가 부담스럽진 않았나.
"당연히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다. 두려움도 컸다. 원래 감독이었던 밥 피터슨과는 2009년부터 함께 이 영화를 준비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구상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극의 전개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창의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픽사 역사상 최초로 모든 제작 과정을 완전히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새롭게 감독직을 맡게 됐다. 감독이 된 후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다듬는 과정이었다. 영화의 골격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모든 제작 부문 스태프를 갈아 치우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그 또한 행복하고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 감독을 맡고 나서 주인공 알로 캐릭터의 디자인에도 변화를 줬나.
"약간은 변화가 있었다. 원래 알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캐릭터였는데 내가 맡으면서 지금의 연령대로 다시 설정했다. 그러면서 알로의 생김새나 움직임도 더 어리고 모자란 듯한 느낌을 주려고 디자인을 손봤다. 픽사 작품 중 어린이가 극 전체의 주인공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우리로선 큰 도전이었다."
- '쥬라기 공원'도 참고했나.
"'쥬라기 공원'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당연히 거기서 영감을 얻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리 영화 속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쥬라기 공원' 속 공룡들의 움직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고고인류학자나 동물생태학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고,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 같은 짐승의 움직임도 면밀히 관찰했다. 캐릭터 설정 상 아기 공룡인 알로에게는 어린 소년 같은 움직임을 많이 더했고, 인간인 스팟에게는 오히려 강아지 같은 움직임을 많이 입혔다."
- 알로 역을 맡은 아역 레이먼드 오초아의 연기가 기가 막히다.
"1400명에 달하는 아역배우 오디션을 봤다. 지역 극단에서 활동 중인 아이들까지 찾아다니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던 차에 레이먼드를 만났다. 아이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알로의 감정을 금방 파악해 연기해 내더라. 연기의 폭이 아주 넓은 좋은 배우다. 한창 변성기라 매 녹음 때마다 조금씩 목소리가 변해 애를 먹기도 했지만, 이전에 했던 녹음을 들려주면 곧바로 톤을 맞춰 연기했다."
- 버치 역에 대배우 샘 엘리엇을 캐스팅한 것도 흥미롭다.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부터 '샘 엘리엇 같은 느낌'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더빙 연기자를 고를 때도 '샘 엘리엇 같은 목소리'를 지닌 사람을 찾다가, 문득 이럴 바엔 그냥 샘 엘리엇을 캐스팅하는 게 낫겠다 싶어 연락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 줬다."
- 극 내내 대자연의 풍경이 실사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데.
"우리가 추구했던 것은 회화적 리얼리즘(painterly realism)이었다.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이야기 전개를 탄탄히 뒷받침해줄 수 있는 배경 디자인을 원했다. 만화적인 알로 캐릭터와 사실적인 배경이 강렬한 대조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즐겨봤던 존 포드나 조지 스티븐스의 영화 속 분위기도 많이 떠올렸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자료 수집을 위해 북서부의 웅장한 산맥들을 방문했는데, 숨이 막힐듯한 절경이 있는 곳마다 언제 산사태가 날 지 모르는 위험이 늘 공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촬영감독이 광활한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바위와 강, 폭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 등을 잘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이 고스란히 영화로 잘 옮겨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