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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법

Los Angeles

2015.12.0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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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편집국장
올초 '올해 나를 붙잡아 줄 두 단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한 해 동안 두 단어를 화두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다다르니 그때 썼던 글이 불현듯 떠오른다. 두 단어는 '성장'과 '보람'이었다. 몇 구절 반추해본다.

'성장'은 나 개인을 향한 것이다. '보람'은 타자, 공동체를 향한 것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 박사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장'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실천과 도전정신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보람'의 중요성은 법륜 스님으로부터 배운다. "사람들 행복론의 90%가 복을 받는, 즉 내가 받는 쪽에 치우쳐 있다. 그러면 더 잘살게 되어도 늘 걸신들린 듯 정신적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주체적으로 베풀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진정으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면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람이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하다."

이런 요지의 글을 쓰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나를 위할 때 오는 성장, 남을 위할 때 오는 보람. 올해를 돌아본다. 성장을 위해서 몇 가지 계획을 했더랬다. 그런데 별로 성취한 것이 없다. 아마도 매년 초에 세운 '성장을 위한 계획'들이 흡족하게 이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지, 하고 자위한다.

돌이켜보면 성장은 못했지만 작은 보람들은 잔잔하게 이어져 온 것 같다. 아침 산책길,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모래밭에 깨진 병조각이 나뒹굴었다. 집에서 청소 도구를 가져와 샅샅이 치웠더랬다. 그날 내가 나를 칭찬했던 흐뭇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몇 차례 김치를 담갔다. 지인들에게 한 포기씩 나눠주었는데, 다음엔 더 맛있게 담가서 주고싶다는 '보람의 욕심'까지 생겨난다. 올망졸망 네 자매를 거느리고 아메리칸드림을 찾으러 온 몽골인 가족과 사고무친의 탈북동포와 밥도 같이 먹으며 그들의 '아는 사람'이 되어준 것도 보람이다. 지나고 보니 나를 위한 성장을 놓친 아쉬움의 크기보다는 남을 위한 자그마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보람이 훨씬 크다. 그래서 행복은 받는 데가 아니라 주는 데서 온다고 하는가 보다.

일본의 저명한 여류 소설가인 소노 아야코는 만 41살 때 '계로록(戒老錄)'이란 책을 썼다.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을 기록함'이란 뜻이다. '살아가는 자세에 있어서 좀 주제넘은 면이 필요한' 소설가였기에 조숙했고, 어떠한 노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 스스로 다짐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40년 넘도록 스테디셀러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언제부터 노인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을 나이에 관계없이 노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노인들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이런 심리상태가 심하면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다. 진정한 성년이란 육체적 연령에 관계없이 베푸는 사람이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의 말도 인용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 이상으로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다"고.

결국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행복이요, 잘 늙어가는 비결이라는 게 계도록 첫 장에 나오는 교훈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 나를 위한 성장을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지기보다는 '주는 행복'의 의미를 새겨보고 새해의 행복설계를 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아, '계로록'에 나오는 보너스 하나. '삐딱한 생각'은 곱절의 자부심이 역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교만으로 흠뻑 찌든 냄새를 풍기니 그런 생각이 있다면 품기만 하고 절대 말하지 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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