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King Kong)은 피터 잭슨 감독의 첫사랑이다. 아홉 살 때 ‘킹콩’을 보고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그는 35년 뒤 총천연색으로 쓴 연서를 첫사랑에게 보낸다.
33년 페이 레이 주연의 흑백영화 ‘킹콩’은 76년 제시카 랭 주연으로 리메이크됐다.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모두 노출된 작품이다. 그럼에도 잭슨은 스펙타클과 드라마, 연기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킹콩이 등장하기 전인 1시간 동안은 30년대 대공황의 뉴욕 풍경과 함께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명료하게 다듬는다. 미지의 섬 ‘스컬 아일랜드’에서 히트작을 만들어야 하는 궁박한 처지의 영화 제작자 칼 덴햄(잭 블랙). 칼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성공 지상주의자다. 배고픈 여배우 앤 대로우(내오미 와츠)는 칼의 출연 제의에 망설이지만 작가 잭 드리스콜(에이드리언 브로디)이 참여하는 걸 알고 스컬 아일랜드 행을 결심한다. 잭은 칼의 시간끌기 작전에 걸려들어 할 수 없이 촬영팀과 동행한다.
블랙이나 와츠, 브로디의 연기를 최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3시간이 넘는 영화의 3분의 1를 차지하는 긴 도입부는 지루하지 않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임에도 웅장하면서도 세밀하고 압도하면서도 감정선이 살아있는 잭슨의 스타일은 가장 지루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재미를 빚어낸다.
‘반지의 제왕’에서 잭슨이 보여준 것들. 컴퓨터 그래픽 영상(CGI)과 실사, 서사와 서정의 단단한 결합은 ‘킹콩’에서 완숙해진다. 잭슨의 대작들은 영화의 새로운 출발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영화산업이 구사해온 어법과 기술력을 통합해 영화적 표현력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잭슨은 영화산업의 물길이 모인 하나의 저수지다. 거대하면서도 세분화된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공정을 감독의 개인작업화 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갖고 있다.
촬영팀을 실은 ‘벤처’호가 섬에 도착하면서 잭슨은 기술과 드라마, 연기를 모아 웅장한 자연과 원시부족의 장엄과 스릴, 인간과 고릴라의 기묘한 사랑을 지휘한다. 평원과 절벽에서 공룡·고릴라·앤이 얼키고 설킨 사투에서 잭슨은 능수능란하게 관객들의 심리를 쥐락펴락한다. 공룡과 사람이 뒤엉켜 좁은 계곡을 내달려 절벽 끝을 돌아가는, 생사를 건 도주 장면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CGI 영화보다 스릴에 넘친다.
그에 비하면 뉴욕의 마천루에서 벌어지는 킹콩과 전투기의 대결은 제시카 랭 주연의 76년 리메이크작을 압도하지 못한다.
잭슨은 33년 원작을 리메이크했다고 밝혔다. 일부 다르기는 하지만 이야기 틀은 33년작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킹콩과 앤의 쌍방형 사랑은 분명 76년 리메이크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만 킹콩의 감정 표현력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자연스럽고 섬세하다. 또 킹콩 앞에서 춤을 추는 등 앤의 감정 표현도 더 적극적이다.
33년작에서 여주인공 페이 레이는 킹콩만 나타나면 비명을 질렀다. 끝까지 킹콩을 싫어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었다. 당시 킹콩 캐릭터는 격렬한 논쟁을 낳았다. 순박하고 우직한 시골 남자(혹은 흑인)가 냉혹하고 잔인한 도시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 흑인에게 납치될지 모른다는 백인 여자의 공포심, 백인 여자를 흑인에게 강탈당할까 두려운 백인 남자들의 분노의 상징이라는 시각 등이 엇갈렸다. 킹콩은 앤을 향한 칼의 억눌린 욕망의 상징이라는 설도 나왔다.
76년 리메이크작은 원작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해석에서 벗어나 여배우 제시카 랭의 섹시함을 강조하는 에로티시즘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때문에 혹평을 받긴 했지만 킹콩의 일방적 사랑을 여주인공과 교감하는 쌍방향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다. 잭슨 감독은 여주인공 역에 와츠를 캐스팅해 랭의 그 끈적거리는 에로티시즘을 줄임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여배우에서 킹콩과 여주인공의 관계, 나아가 킹콩으로 이동시켰다. 그럼으로써 미녀와 야수의 사랑이라는 고전적 모티브를 비극적으로 끝낸다.
킹콩이 죽자 누군가 말한다. “전투기가 킹콩을 죽였어.” 잭이 중얼거린다. “킹콩을 죽인 건 다름아닌 아름다운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