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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서 시리즈]준천계첩

San Francisco

2005.12.2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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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섭 교수(버클리대 방문학자/인천전문대)

청계천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이제 자연의 물소리와 함께 쾌적한 공기까지 주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청계천을 잘 가꾸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환경복원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처음 이름이 개천(開川)이었던 청계천은 천도 이후 물길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이나 개천은 의례 세월이 지나면 바닥에 토사가 쌓이므로 범람을 막기 위해서는 준설(浚渫)을 해주어야 한다.
시가지를 통과하는 청계천은 더욱 준설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가장 방대한 준설작업은 영조 36(1760)년에 있었다.
당시의 일은 ‘영조실록’과 ‘만기요람’등에도 전하나 내용이 소략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림과 함께 당시 작업의 전모를 자세히 밝혀주고 있다.
준천(濬川)은 ‘개천 바닥을 파서 쳐내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을 현재는 준설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준천이라고 했다.
작업은 그해 2월18일에 시작되어 57일만인 4월15일에 끝났는데, 동원된 연인원이 모두 21만5,380여 명이나 되었다.

영조가 ‘나의 마음은 오직 준천에 있다’며 지극한 관심을 두었던 이 사업은 탕평, 균역책과 함께 그의 3대업적에 속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책을 펼치면 어제어필을 시작으로 어제사언시, 네 장의 그림, 준천소좌목 그리고 발문이 있는데 모두 비단을 이용하였다.

수록된 그림은 채색이 뛰어나고 아주 정밀하며 장정 역시 정교하다.
어제어필은 ‘준천하는 여러 곳에서 보고 포상함은 갸륵하게 여겨 함이니 사양하지 말라’(面賜濬川諸堂, 以示嘉尙, 仍命勿謝)는 내용이다.

사언시는 ‘준천 공역을 끝냄은 그대들이 정성을 다함이었다.
나는 들었노라. 광무제가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낸다고’(濬川功訖, 卿等竭誠, 予聞光武, 有志竟成)라는 내용이다.
이 시는 후한의 광무제가 부하 장군인 경엄이 부상당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오기 전에 마침내 승리하자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루어낸다(有志者事竟成)’고한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이다.

이러한 비유를 한 것은 준천이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중 첫째는 수문위에서 작업현장을 보는 모습, 둘째는 영화당에서 음식을 내린 모습, 셋째는 모화관에서의 시험모습, 넷째는 연융대에서의 연회모습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그림이 영조가 준천이 거의 완성되어 가던 그 해 4월9일에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청계천에 간 사실을 그린 것이다.
그림 제목은 수문상친임관역(水門上親臨觀役). 여기서 수문은 오간수문으로 다섯 칸 되는 수문을 말한다.
이것은 다리가 아니라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성곽 아래에 만든 수문이었다.

그런데 수문 앞에 긴 돌을 놓아 사람들이 건너다니도록 하였으니 다리의 기능도 수행한 셈이었다.
준천작업 중에서 가장 힘든 이 공사를 6일 만에 끝내자 영조는 ‘백성들의 힘이 하늘을 이긴 것’이라며 극찬하였다.

안타깝게도 이 수문의 원형은 1907년에 해체되었다.
나머지 그림들도 이 작업에 참여한 관원들을 독려하고 위로한 사실과 관련된 것이다.

이어 목판으로 흰색비단에 찍은 준천소좌목이 있다.
작업부서인 준천소의 관원 명단과 동원된 인력수를 5장에 수록해 놓았다.

현재 한국에는 이 책과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것이 여럿 있고, 그 중의 하나는 내용의 설명과 함께 영인되어 보급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책과 한국내 전본과의 차이는 크다.
특히 그림과 장정에서 그렇다.
이러한 책들은 18세기 중반까지는 관료들이 결성한 계회에서 완성하였는데 관청이나 궁중에서 보관할 용도의 한 책과 고위관료들이 나누어 가지기 위해 여러 책을 함께 만들었다.
그러니까 관청 등 보관용은 유일본이고, 나누어 가진 것은 복본인 셈이다.

유일본과 복본은 내용은 같지만 그림의 정밀성과 채색성 그리고 장정의 정교성 등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준천계첩 역시 ‘첩(책)을 만들어 (1책은 임금께) 올리고, 또 각기 한 책씩을 소장하오니 이 또한 임금의 명을 받든 것입니다’고 한 홍봉한의 발문과 같이 유일본 외에 여러 책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UC버클리 소장의 이 책이 처음 영조에게 바친 유일본 준천계첩이다.
예술적 가치가 다른 전본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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