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간지(干支) 11번째 동물인 개는 인간에게 가장 충복(忠僕)스런 동물로 알려져 왔다.
‘사흘만 길러도 주인을 알아본다’ ‘주인이 개를 배신해도 개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속담은 말 그대로다.
아첨의 말로도 자주 이용되는 견마지로(犬馬之勞)는 주인에게 절대 충성한다는 개의 충직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국 작가 위더의 1872년 작품 ‘플랜더스의 개’는 인간에 대한 의리와 충성과 지혜를 총칭해 보여주고 있다.
‘영리한 개는 눈치없는 마누라보다 낫다’ 는 우리의 속담은 주인의 뜻을 재빨리 알아채는 개의 높은 지능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개의 해에 영리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난다고 하는 속설도 있다.
프랑스의 문호 모파상ㆍ볼테르 등과 세계적인 음악가 드뷔시ㆍ비제 등이 우리 식으로 개 띠다.
세계의 동물보호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개가 ‘Companion Animal’ 즉 반려동물(伴侶動物)로 통한다.
말 그대로 ‘늘 곁에 두는 동반자, 친구’를 의미한다.
지난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처음 제안된 용어다.
미국의 호텔 체크 인 서류에 ‘Expanded Family(확대가족)’를 묻는 칸이 있을 정도다.
개를 패밀리의 구성원으로 보는 것이다.
개만큼 후각과 청각이 발달한 동물도 드물다.
청각은 인간의 5~10배, 후각은 2만~2만5천배 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난 1924년 인디애나 주에서 주인을 잃고 2천250여 마일 떨어진 오리건 주의 주인 집까지 6개월 걸려 찾아간 개(보비)가 있을 정도다.
이 이야기는 1950년대 ‘명견 러시’ 라는 제목의 TV영화로 각색돼 방영됐다.
우리 고국에서도 지난 93년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갔다 7개월만인 94년 1월 진도의 집까지 찾아온 진돗개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세계 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이 있다.
영국 버킨셰어의 오크와 탱글이라는 개는 인간의 2만5천배나 되는 후각을 통해 암환자의 독특한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소변으로 방광암, 입김으로는 위암ㆍ폐암ㆍ식도암을 구별해낸다고 한다.
세계적인 MD앤더슨 암센터에서는 특별히 훈련된 개들이 의료진을 도와 암환자들의 재활치료에 공헌하고 있다.
이같은 특수한 기능으로 마약이나 탄약 탐지견ㆍ경찰견ㆍ맹도견ㆍ사냥견ㆍ구조견 등 인간을 위해 각 분야에서 눈부시게 활동중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접경 성 베르나르 고개 구조견들은 1750년 폭설 당시 조난자 2천500여 명의 목숨을 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개는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악한 잡귀를 막아주어 가문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믿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과 파라오(왕)들 무덤 속에는 개의 모습을 한 수호신 형상들이 설치돼 있다.
통일 신라 때 양반 가문의 묘 주위에도 수호신 의미의 개 모양 장식을 만들었다.
개모양토우(犬形土偶)ㆍ신구도(神狗圖) 등도 사악한 귀신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기 위한 형상품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속에 개(犬)자가 들어간 말만큼 좋지 않은 뜻으로 널리 사용되는 말도 드물 것 같다.
‘개 눈에는 ×만 보인다’ ‘개 팔자가 상팔자’ ‘‘개 귀에 방울’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꼬리 3년 둬도 황모(黃毛) 안된다’ ‘개가 개 낳지’ ‘개 따라 가면 측간 간다’ ‘궂은 날 개하고 논 것 같다’ 등 숱하다.
개살구ㆍ개떡ㆍ개쑥ㆍ개차반 등 ‘개’ 자가 붙은 낱말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비열한 짓을 저지를 때도 개에 비유했다.
‘권력의 앞잡이(走狗)’ ‘양 머리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羊頭狗肉)’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泥田鬪狗)’ ‘닭 울음소리와 개 흉내 잘 내는 좀도둑(鷄鳴狗盜)’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말로는 ‘개 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지거리도 있다.
아깝게 요절한 민족 시인 윤동주는 그의 시 ‘또다른 고향'에서’ ‘…지조높은 개는 밤 새워 어둠을 짖는다’ 고 썼다.
우리 동포들에게는 이곳 시카고 역시 또다른 고향임에 틀림없다.
‘개띠 해’ 에 우리들에게 지난 해와 같은 어둠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동포 모두에게 ‘지조높은 개’가 되자고 하면 ‘개’라는 이미지 자체가 원채 비천한 의미가 너무 강해 껄끄럽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