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뛰어들기보다 물끄러미 삶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집 앞에서 바라보이던 북한산이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북한산을 보기 위해 부러 행주대교를 건넌다. 가까이에선 볼 수 없던 산의 전신을 강 건너면 볼 수 있다. 숲도 마찬가지다. 빽빽한 나무들만 시야를 가리던 숲은 멀리 떨어지는 순간, 그 형체를 드러낸다. 삶으로부터 한 발자국쯤 비켜 나와 삶을 본다. 바라보는 순간에도 나의 삶,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고 있구나….”
겨울 산행은 잦은 날씨 변화에 따른 안전 문제에만 주의한다면 다른 계절에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묘미가 있다.
<시인, 김재진의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서문 중>
2006년의 태양이 밝았다. 연초마다 올해에는 꼭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지만 차일피일 하다보면 어느 틈엔가 연말이 가까워오는 경험을 벌써 몇 해째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져 가는 몸. 이제는 정말 무언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건강관리와 신체 단련을 위해 등산만한 운동이 있을까. 이것저것 다 해본 이들이 입을 모아 등산을 최고 운동으로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건강한 육체에는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꾸준한 산행은 육체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심을 길러낸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이 있다면 산 뿐일 성싶다'고 노래했던 시인의 말대로 산은 거기에 홀로 누워 위대한 자연 앞에 한갓 미물과 같은 인간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들 삶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선 쳇바퀴 도는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산에 오를 일이다. 산에 올라 한 발자국씩 토닥토닥 걷다 보면 삶의 찌꺼기가 말끔히 내려앉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산의 정상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그 자체로 족하다. 꼭 정상에 올라 깃발을 꼽지 않아도 '야호'를 외치지 않아도 산에 오르는 과정을 즐기게 될 때 무모하게 오르려는 욕심조차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산에 오를 수 있다.
한국 국토의 70퍼센트는 산. 그래서 우리의 몸 깊숙한 곳에는 매일 아침 동산에 오르던 기억의 파편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맑고 깨끗한 산 공기의 맛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산은 우리들을 치유한다.
LA에 과연 산다운 산이 있을까 싶었다. 산에 오르고 나서 보니 LA만큼 훌륭한 산이 많은 도시도 드물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멀리서 보면 메마른 바위에 돌만 황량하게 구를 것 같은 사막 지대의 산. 하지만 산 속 깊숙이 들어가 보면 놀랄 만한 세계가 펼쳐진다. 곳곳에서 만나는 나무 바위 계곡 풀꽃 산새들은 고향의 산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LA의 구석구석을 폭넓게 돌아보고 체험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산행은 최적의 레저다.
산이 지천에 깔려있건만 문제는 우리들의 게으른 몸이다. 무리한 계획일랑 애초에 세우지 말자.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격주로라도 꾸준히 계속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에 산행을 부추기는 또래 집단을 두는 것. 혼자는 하기 힘들어도 "우리"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