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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플럭서스 예술가 ‘오노 요코’

Chicago

2006.02.1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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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내<작곡가>
지난 주 작고한 비디오 아트의 대가 백남준 선생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플럭서스(Fluxus)’다.

플럭서스란 흐름, 변화 등을 뜻하는 라틴어로 1960∼70년대 서구사회에 유행했던 전위 예술운동의 이름이기도 하다.

20세기 초의 다다이즘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럭서스도 음악ㆍ미술ㆍ건축ㆍ영화 등 장르에 경계를 두지 않고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예술 활동을 추구했다는 점, 그리고 기존의 ‘예술’이라는 거창한 개념에서 벗어나 일상의 모든 것들을 예술화 하려 했다는 점으로 특징지워진다.

정해진 시간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그 동안 들리는 모든 소음을 음악으로 간주한 존 케이지나 일찌감치 살아있는 동물을 오브제로 선택한 요제프 보이스, 연주를 하다 말고 피아노를 때려부순 일화로 유명한 백남준 등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면면이 이 예술운동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부인으로 더 알려진 전위 예술가 오노 요코(Yoko Ono 1933∼)도 젊은 시절 플럭서스 예술가였다.

동경의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을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그녀는 일본 귀족들이 다니는 학습원 대학을 거쳐 뉴욕의 사라 로렌스 대학을 졸업했고, 작곡가이자 영화 제작자였던 두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통해 알게 된 젊은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일찌감치 플럭서스 운동에 뛰어들었다.

무대 위에 앉아 관객들이 자신의 옷을 조각조각 자르는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관객들로 하여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정에 쓰여진 단어를 돋보기를 통해 보게 하는 것, 일상적 오브제들을 반으로 잘라 세계의 불완전성을 표현한 설치예술 등 그녀의 작품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이루어진 한 편 관객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는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66년 오노는 런던으로 그 활동 무대를 넓혔는 데, 그 해 11월 그녀의 작품이 전시된 화랑에서 일곱살 연하였던 존 레논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오노의 예술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레논은 이후 여러 모로 그녀를 돕게 되고(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녀의 스토커적으로 집요한 접근 노력이 있었다고도 한다), 결국 그는 수년에 걸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오노와 새 삶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결혼은 그러나 오노에게보다는 레논에게 더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신혼여행을 호텔 방에서의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 퍼포먼스로 대신하는 것으로 시작해 함께 전위음악 앨범을 발표하고 두 사람이 완전 나체로 등장한 앨범 사진을 찍고 뉴욕 한복판에 평화를 위한 입간판을 거는 등(유년기를 전쟁 중인 일본에서 보낸 만큼 오노 요코의 예술가로서의 화두는 ‘평화’와 ‘반전’인 듯하다) 늘 화제를 불러 일으킨 그들의 공동 작업은 주로 오노가 레논에 끼친 정신적ㆍ예술적 영향에 의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심지어 비틀즈 연습장과 공연 여행지까지 따라붙는 한편 존 레논의 음악까지 간섭하는 오노 요코, 그리고 갑자기 반전이니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개인행동을 하는 존 레논이 비틀즈 멤버들과 팬들에게 곱게 보였을 리 만무하고, 결국 멤버들간의 이런저런 불화로 1971년 비틀즈가 해체되자 오노는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만 했다.

비틀즈를 떠난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계속적인 반전, 반 인종주의 캠페인 등을 펼치다가 1975년 아들이 태어나자 음악계를 떠나 주부(house husband)의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다시 한 번 만인의 주목을 받고, 음악활동을 재개한지 얼마 안 된 1980년 한 정신질환자가 쏜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다.

오랜 세월 동안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의 그늘에 가리워 ‘존의 명성을 이용해 부와 이름을 얻은 야심가’, ‘비틀즈를 해체시킨 마녀’ 등의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이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느냐, 그는 오노의 앵무새에 불과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유명하지만 근본적으로 평범한 록 가수에 불과했던 레논이 한단계를 넘어선 ‘예술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노 요코는 요즘 들어 그녀의 작업들을 한데 모은 회고전을 열고 전기를 출판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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