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무려 12년 1개월 만의 최저가격인 31.41달러를 기록했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12일에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이 장중 한때 29.97달러로 2003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이어가 배럴당 30.4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는 올 들어 7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북해산 브렌트유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브렌트유는 11일 6% 급락해 배럴당 31.55달러로 2004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데 이어 12일에도 1.5% 이상 추가 하락한 배럴당 31.06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CNN머니에 따르면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국제 유가가 앞으로도 30%가량 추가 하락할 것으로 11일 전망했다. 이에 따르면 브렌트유 가격이 20~25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며 위안화의 평가절하로 달러의 절상 효과가 더 커지면 브렌트유가 배럴당 20달러까지도 하락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골드만삭스도 지난 연말 올해 안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으며 씨티그룹도 최근 유가가 20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전망이 이어지는 것은 수요와 공급 모두 단기간에 반전을 가져올 요인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제 성장 둔화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결정적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원유 과잉 생산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국교 단절의 초강수까지 두면서 세계 원유시장 패권 다툼을 하고 있으며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도 단시간 내에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산유국들이 생사를 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공급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 국제 원유시장이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다.
12일 CNBC 보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석유장관 등 일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오는 3월 비상회의 소집을 제안했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6월의 정례회의 때까지 모임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유가가 좋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자동차 휘발유값이나 난방유값 등이 자연히 하락해 소비자의 가처분 소득이 많아지고 다른 곳에 대한 소비가 늘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1일 전국 평균 휘발유값(레귤러 기준)은 갤런당 1.96달러로 전년 동기 2.14달러보다 8.5% 하락했다.
하지만 문제는 원유가 이미 금융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펀드가 자산 포트폴리오에 원유 등 원자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증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뉴욕증시도 올 들어 유가 하락 때문에 몇 차례 폭락을 경험했다. 이에 따라 직접 주식에 투자하거나 직장의 401(K) 플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이 투자 손실을 입고 있다.
또 미국 에너지 업체의 연쇄 도산 사태가 예상되고 있다.
12일 CNBC 보도에 따르면 오펜하이머의 페이덜 가이트 투자분석가는 원유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정도의 적정가를 회복하기 전에 미국 셰일원유 생산업체의 절반이 파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울프리서치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2017년 중반까지 미국의 원유.개스 생산업체 3분의 1가량이 파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의 유가로는 북미 원유.개스 생산업체의 적자가 매주 20억 달러씩 누적되고 있는데 이들은 이자라도 갚기 위해 원유를 계속 생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매출액의 40%를 이자로 지급하고 있는 이 업체들이 생존하려면 유가가 최소한 배럴당 50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