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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넘나든 리비아 벵가지의 13시간을 쫓다

Los Angeles

2016.01.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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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벵가지의 비밀 요원(13 Hours: The Secret Soldiers of Benghazi)'
감독: 마이클 베이
출연: 존 크라신스키, 제임스 배지 데일, 파블로 슈라이버 등
장르: 액션, 전쟁, 드라마
등급: R


'13시간:벵가지의 비밀 요원(13 Hours: The Secret Soldiers of Benghazi)'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영화다. 보는 내내, 마치 죽음이 코 앞에 와 있는 것만 같다. 그만큼 영화는 전장의 한 가운데서 벌어지는 국지전의 긴박감 넘치는 상황을 숨 막힐만큼 생생하게 그려보인다. 꼭 쉴 새 없이 총알이 빗발치고 탄약이 터지는 전투 상황이 아닐 때도 그렇다. 한 순간도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험악한 거리의 풍경과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날 선 분위기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영화를 보게 만든다.

영화는 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벵가지 소재 미국 영사관에 테러를 감행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인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슨 대사를 비롯 미국인 4명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다. '13시간:벵가지의 비밀 요원'이 주목하는 것은 당시 마지막까지 벵가지에 남아있던 미국인들을 지키고자 사력을 다했던 전직 군인 출신 특수 요원 6인의 활약이다. 복잡한 정치적 이유로 인해 빠른 상황 판단과 대처에 실패한 상부 대신, 저돌적 투지와 과감한 작전으로 테러리스트들과 맞선 이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사건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의 과정을 발생 순서대로 펼쳐 보인다. 불시에 공격당해 버린 영사관, 뒤늦게 구출에 나선 요원들, 다급한 지원 요청, 기지를 지키기 위한 사투까지가 마치 한 호흡처럼 순식간에 그려진다. 강약의 조절없이 내리 내달리기만 하는 리듬은 가끔 숨 가쁘고 버겁지만, 나름의 박진감은 살뜰히 챙긴다. 중요한 전개 포인트마다 분단위로 쪼갠 사건 발생 시간을 명시해 사실감을 높이고 속도감에 불을 지핀 것도 좋은 수다. 강렬한 색감과 생경한 리비아 국민들의 일상을 통해 벵가지란 낯선 공간을 위험하고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감각도 눈에 확 들어온다. 물량 공세도 어마어마하다. 진절머리 날 만큼 많은 양의 총탄 세례가 끝없이 계속된다. 저절로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전쟁 액션'이란 키워드 만큼은 충실히 구현해 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드라마'적 완성도 면에서, 영화는 공허하기 그지없다. '전쟁 드라마'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전쟁에 대한 통찰이나 이를 마주한 인간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형적 미국식 영웅주의 공식을 따른 것이라 해도 애매하다. 6명의 요원들에게 예우를 표하려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그들을 기려야 하는 지점이 어딘지 혼란스럽다. 액션에만 치중하다 생긴 패착이다. 목숨걸고 싸운 주인공들마저 그저 '잘 훈련된 전쟁 머신'처럼 그려졌을 뿐이다. 엔딩 무렵 허겁지겁 당시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자막과 실존 인물들의 사진, 근황을 붙여 넣어봤지만 큰 효과는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같은 깊이와 묵직함을 꿈 꿨겠으나, 한참을 못 미치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영화에 그쳤을 뿐이다.

힘을 잔뜩 줘 멋을 부리는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이 긴박한 전쟁 영화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툭하면 등장하는 슬로 모션 촬영 기법이 대표적이다. 비장함을 연출하는 데는 제 몫을 하지만, 과도한 감도 없지 않다. 특히 촌각을 다투며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그리는 데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생존자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급파한 항공기 승무원들이 타이트한 미니스커트 제복에 하이힐 차림으로 서 있는 장면을 굳이 넣은 것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베이가 여성을 묘사하는 지극히 정형화된 방식이긴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를 해치고 말았다.

한편, '13시간:벵가지의 비밀 요원'은 개봉 시기를 놓고 정치권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국무장관 시절 가장 뼈아픈 실패로 꼽히는 사건을 소재로 한데다, 개봉 시기마저 민주당 경선 레이스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작사 측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지 않다고 밝힌 상태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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