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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서 시리즈]염요(艶謠)

San Francisco

2006.02.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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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섭 교수(버클리대 방문학자/인천전문대)

어머니가 기생이면 아버지가 누구든 자식은 그냥 최하층의 신분이 되었다.
그 중에서 딸은 어머니를 이어 다시 기생이 되고, 이렇게 신분을 세습하는 여인의 삶은 질곡의 연속이었다.
성도 없이 이름으로만 불렸던 이들 대부분은 예인(藝人)으로 사라져 갔다.

사실 기생들도 일패(一牌), 이패, 삼패 등의 등급이 있었다.
일패는 궁중에서 활동하거나 전통가무를 하는 여인, 이패는 음률을 알아 사대부들을 상대한 여인, 삼패는 잡가만을 불러야 했던 여인들이었다.
이들중 상급 기생은 교류한 사람들이나 그들과 주고받은 작품이 꽤 전한다.
그러나 하급 기생은 교류한 사람들은 물론 그녀들이 불렀다는 잡가도 거의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19세기 후기에 이패, 삼패에 해당하는 지방기생들이 부른 잡가를 수록한 책이 있다.
바로 ‘염요’이다.
서명 중의 염은 곱다, 아름답다는 뜻이고, 요는 노래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노래’또는 남녀 간의 아름다운 노래이니 ‘연가(戀歌)’로 이해해도 되겠다.

갑술년(1874) 6월22일부터 7월16일까지의 연회에서 있었던 노래 4편을 모아 두었다.
첫 노래는 ‘금강석별낙양낭군곡’이다.
이 노래는 나주기생의 우두머리로 이급 기생인 형산옥(荊山玉)이 부른 것이다.
제목 중의 낙양은 중국의 옛 서울로 숙향전, 구운몽, 배비장전 등 유명한 고대소설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이곳은 듣기에는 익숙하지만 사실은 멀다.
그렇기에 님이 그녀를 잊어서 안 오는 게 아니라 멀리 있어 못 오는 것으로 말하는 데 좋은 곳이다.
가사를 줄여서 소개한다.

고이 하다 고이 하다 나의 팔자 고이 하다/ 낙양낭군 날 버리니 이팔청춘 홀로 할까/ 작년 이별 금년 이별 이별마다 낙양낭군/ 다시금 헤아리니 아마도 우리 님은 슬프고 또 슬프다/ 우리낭군 어디가고 이내 진심 모르는가/ 나의 팔자 박복하여 이런 이별 또 당한다/ 속절없다 이별이야 남은 간장 다 녹는다/ 우리낭군 다시 만나 이승인연 이어볼까.
만났다 헤어지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눈물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두 번째 노래는 위와 제목이 같은 단가로 삼급 기생인 인애가 부른 것이다.
세 번째 노래는 7월13일 밤 공주(公州)의 관리들과 화산교에서 술을 마시며 즐길 때 흥을 복 돋운‘화산교가’이다.

어와 호걸 님내 들아 이내 말씀 들어 보소/ 인물도 좋을시고 김병방 맵시 있다 노형방/ 조촐할 손 형산옥과 아리따운 준예(기생이름)로다/ 언제나 또 다시모여 이 놀음을 다시 할까.
끝으로 7월16일에 뱃놀이를 할 때 노래인‘서호가(西湖歌)’가 있다.
이 노래는 동파 소식의 적벽부에다 가사를 바꾸고 보탠 것이다.
그런데 형산옥의 이력이 재미있다.
형산옥이란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형산에서 주어 왕께 바친 옥돌로 남이 몰라주는 귀중한 보배를 뜻한다.
그녀는 고종 10(1873)년에 있었던 궁중의 연회에서 자신의 패들과 함께 칼춤의 일종인 항장무(項莊舞)를 잘 추어서 천인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포상을 받았다.
이때가 이 노래를 부르기 1년 전의 일이다.
항장무를 춘 무희들이 이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의 노래는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대중적이다.
그런데 신분상 그녀들은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이별과 원망, 그리고 체념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그 아픔을 승화시켜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었다.
그 노래하는 모습과 소리 지금도 보이는듯 들리는듯 생생하게 와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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