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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칼럼 '와인과 소주'] 생활의 윤활유 하얀 거짓말

Los Angeles

2006.04.0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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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불법주차 티켓을 받았다. 친구가 대납한 영수증을 보여주는데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알아보니 액수를 부풀렸다. 전화 한 통이면 금방 들통나는 거짓말이다.

한국에 빨간 거짓말이 있다면 미국에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이 있다. 하얀 거짓말은 상대방을 민망하게 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 꾸며대는 거짓말이다. 예를 들면 친구가 산 옷이 촌스러워도 예쁘다고 하거나 못생긴 여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이다. 돈 안드는 칭찬도 여기에 속한다. 코케이션 대화의 상당 부분 하얀 거짓말이다. 실없는 찬사에 기분좋아 하다간 추락하기 쉽다.

'미국 사람들 할 일 없이 땡큐하고 사랑도 말로 한다'라는 내 반쪽의 지적은 예리(?)하다.

칭찬은 대강 추려서 듣고 내용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가늠 해야한다. 서양인들은 실제 상황보다 몇 단계 높히거나 부풀려서 좋게 말하기 때문에 스케일을 10으로 잡을 때 3점 마이너스해서 판단하는 것이 원래 내용에 근접하다.

반면에 한국 사람들의 대화는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너무 솔직하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보다 자기 기분에 열중하는 수가 많다. 사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나쁜 경험이나 자신의 감정까지 더해서 좋지 않게 말하는 수가 더러 있다.

흥분과 설레임으로 첫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릴 때였다. 산모에게 주는 교훈마저 두 나라는 엄청 달랐다. 미국 부인들은 대체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이 너무 커서 출산의 고통은 병아리 눈물같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반면에 한국 부인들은 해산의 고통을 비디오를 보듯 실감나게 일러줘 두려움에 떨게 했다. 한국 사람이 어떤 일을 말할 때는 3점을 가산해서 좋게 판단해도 될 때가 많다.

한국 사람은 정이 유난히 많다.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애정을 갖기 때문에 충고를 잘한다. 미국 사람들은 섣불리 충고하는 것을 꺼려한다. 문제를 의논하면 그냥 듣고만 있는다. 카운셀링은 전문가가 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감정을 섞지않고 객관적인 태도로 대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여 정떨어질 때가 있지만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한국문화는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주변에 발생하는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 심지어 정부가 하는 일에도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가야 한다.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서인지 한국 사람은 위기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판단력이 서양사람들보다 빠른 것 같다.

들통나면 오리발 내밀 작정하고 일단 상황을 유리하게 하는 것이 빨간 거짓말의 장점이다.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라서 빨간 거짓말은 장기적으로 보면 실리가 없다. 하얀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해야 약발이 나지 심하면 진실성이 결여되어 말의 신뢰도를 잃는다. 빨간 거짓말도 하얀 거짓말도 그 동기가 순수하면 지탄받지 않는다. "거짓말도 만 번을 하면 덕이 된다"는 성현의 말씀은 일찌기 미국식 하얀 거짓말을 꿰뚫어 본 동양 철학의 진수다. '거짓말은 죽어도 못해'라며 남의 결점 꼬집길 좋아하고 상처주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하얀 거짓말 한 두 개를 연습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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