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도 '뽑았던' 연방대법원
김 종 훈 / 야간제작팀장
연방 대법관의 성향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세상에 드러났다. 사실상 당시 스캘리아를 포함한 5명의 보수 대법관들이 진보 대법관 4명을 한 표 차이로 꺾고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당선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8년간 미국은 9.11 테러 참사와 이라크 전쟁, 금융위기를 맞았고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00년 11월 공화당 부시 대선 후보는 동생 젭 부시 현 대통령 후보가 주지사로 재임 중이던 플로리다주에서 첫 개표 결과 1784표 차이로 민주당 앨 고어 후보를 눌렀다. 이에 따라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27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하지만 표 차이가 0.5% 미만이었기 때문에 기계를 통한 자동 재검표가 실시됐고 부시의 승리는 327표 차이로 줄었다. 이후 플로리다 주법에 따라 고어 후보 측은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다시 표를 확인하고 있는 동안 주정부는 주법이 정한 개표 마감 시한을 지켜야 한다며 모든 재검표를 중단시켰다. 이때부터 공화당은 재검표를 막기 위해, 민주당은 재검표를 실시하기 위해 법정싸움이 시작됐고 결국 연방대법원이 5대 4로 공화당의 손을 들어줘 부시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한 명 더 많았던 보수 대법관들이 대통령을 뽑은 셈이었다.
이후 12월에 또 플로리다주에서 소송이 제기돼 주 대법원이 전면적인 재검표를 실시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 또한 연방대법원이 5대 4로 묵살했다. 당시 스캘리아 대법관은 재검표가 부시 대통령 당선자와 국가에 막대한 해를 끼칠 수 있으며 선거 결과의 적법성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 재검표를 지지한 대법관들은 합법적인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그 어떤 해도 끼칠 수 없으며 거꾸로 재검표를 막는 것이 선거 결과의 적법성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2001년 부시는 대통령에 취임했고 재검표 결과에 호기심을 가진 언론사와 대학 연구기관 등이 수차례에 걸쳐 재검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검표 방식에 따라 고어의 승리로 집계되기도 했다. 물론 법적 효력은 없었다. 하지만 부시 또는 고어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플로리다주 유권자들이 법적 절차에 따라 자신들이 투표 결과를 재확인할 자유와 권리를 연방대법원이 박탈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투표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간단한 논리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내세우며 화려한 어휘로 법을 해석한 '고명하신' 보수 대법관들의 정치적 판결로 무너져 내렸던 순간이었다.
그 뒤에도 연방대법원의 수많은 판결이 5대 4로 내려졌다. 부자들의 무제한 선거 캠페인 자금 지원을 허용하는 수퍼PAC을 허용하고 오바마 행정부가 전 세계에 약속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정책에 제동을 거는 등 5대 4 판결은 그동안 미국사회의 진보를 막아왔다. 따라서 새 대법관 임명은 앞으로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쪽이 5대 4 판결로 승리할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외나무다리의 결투가 됐다. 그리고 대법관 임명 결투의 승자는 올해 선거가 판가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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