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8시 맨해튼 거리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한 주를 시작하는 긴장감 출근길 사람들의 민첩한 속보에 흠칫 놀라며 덩달아 빨라진 걸음을 재촉한다. 눈이 또 내리려나, 날씨마저 우울하고 며칠 전 폭설의 잔재인지 길 둔턱마다 쌓여 있는 검은 눈이 녹아 내려 도로가 질펀하다. 길을 건너야 하는데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잠시 균형을 잃은 상체가 흔들린다. 간신히 착지를 하며 땅에서 시선을 뗀다. 그 순간 코앞에 한 남성이 안타까운 듯 빈손을 거둔다. 그는 "1분만 당신을 먼저 보았다면 손을 잡아 주었을 텐데…"라며 아쉬운 듯 살짝 웃는다. 남을 돕겠다는 열린 마음이 좋아서 양팔을 벌리고 안아주며 아무튼 고맙다며 "좋은 하루" 환하게 응수하고 각자 제 갈 길로 발길을 돌렸다.
회사에 들어오니 이것저것 밀린 서류가 많다. 서류라는 것이 거의 다 고지서니 불경기에 산다는 게 빠듯하고 며칠째 괜찮던 위가 또 쓰려온다. 약을 사러 빌딩 밖으로 나와 걷는데, 저만치 사람들의 무리가 시선을 끈다. 호기심이 발동해 길을 가로질러 광장으로 가 보았다. 차가운 날씨에 프리허그(Free Hug) 사인을 들고 있는 남자, 오 마이 갓, 아침에 내게 손을 내밀던 그 남자였다. 그의 주변에는 원을 그리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멋들어진 베레모를 쓰고 훤칠한 키에 헐렁한 가죽코트를 입은 흑인남자가 다가가 그에게 안긴다. 이번에는 여드름이 얼굴에 가득한 소녀가 두 팔을 벌리고 안긴다. 웃음을 보내는 사람,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장소에는 겨울도 비껴가는 건가 훈훈하다. 큰 제스처로 안아 주는 눈빛이 살 만해, 괜찮아, 힘내, 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서로 모르는 낯선 이방인들의 포옹,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타인과 타인이 서로에게 보내는 위로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이것이 단순한 포옹이 아니며 어떤 재미를 유발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젊은 남성이 프리허그를 하게 된 그 동기가 내심 궁금해졌다. 왠지 한때는 죽을 만큼 몹시 외로웠던 건 아닐까. 혹독한 고통을 치른 자 모질게 그 아픔을 극복한 자의 열린 마음의 행위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니 더 깊은 감동으로 느껴졌다.
최초의 프리허그는 제이슨 헌터(Jason G Hunter)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자기 엄마의 장례식에 온 조문객들이 하나같이 어머니가 살아생전 따뜻한 포옹으로 주변 사람을 위로했다며 그 포옹이 자신들의 슬픈 순간 얼마나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데서 영감을 받고 그 뜻을 기려 2001년 시작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스스로 'Free Hug'라는 피켓을 들고 기다리다가 자신에게 포옹을 청해 오는 불특정한 사람을 안아주는 어찌 보면 이 생소한 행위가 사실 사랑이다. 사람의 본질은 사랑 아닐까. 겉으로는 반지르르 웃고 있지만 저마다 가슴속에 허한 뻥 뚫린 구멍을 안고 삶에 적응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의 고독한 우리들, 그 정신적 공허를 위안하고자 이 포옹의 퍼포먼스를 생각해 낸 한 사람의 깊은 인간애, 감동이다. 당신은 꽤나 괜찮은, 충분히 멋진 사람이라는 믿음과 애정을 타인으로부터 확인할 때 자존감이 극대화되며 힘과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아주 작은 눈웃음과 관심 별거 아닌 듯한 칭찬 한마디에 힘을 받는다.
타인을 향한 존중과 작은 배려를 프리허그라는 용기로 표현한 멋진 남자 덕분에 솟구치는 기쁨과 희망을 안고 광장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물론 광장을 떠나기 전, 그와 나, 다시 한 번 '당신의 라이프에 행운을' 가슴을 크게 열고 포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