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된 미국 영화 중에 '퍼시픽 하이츠'라는 영화가 있다. 멋진 집에 사는 주인공 부부가 어느날 정체불명의 세입자를 들이면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사촌은 커녕 그저 사생활에 방해를 안끼치는 얌전한 이웃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행운인 것 같다. 오죽하면 이상한 이웃을 소재로한 공포스릴러까지 만들어졌겠는가.
공포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도 윗층 사람들 때문에 주말마다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 집은 5층짜리 아파트 형태인데 천정과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여간 신경쓰지 않으면 침실에서 걸어나와 화장실로 들어가서 샤워하는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아래층까지 다 들릴 정도다 . 사실 그동안은 운좋게 얌전한 사람들을 만나서 문제가 없었는데 몇개월 전 윗층에 젊은 여성 두명이 이사를 들어온 뒤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주말 내내 새벽 2시까지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파티가 계속되고 특히 그녀의 남자친구들만 왔다하면 평일이고 주말이고 상관없이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하는 음악 소리 집안에서 축구라도 하는지 우당탕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 한두번은 그러다 말겠지하면서 참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남편이 윗층으로 올라갔다. 좀있다가 씩씩거리면서 내려온 남편 왈 미안해하기는 커녕 주말인데 뭐 어떠냐는 태도였단다. 토요일 밤이긴 했지만 그때가 이미 새벽 2시가 넘었을 때다.
그 다음 주에도 여전히 똑같은 상황은 계속됐고 남편이 아침 일찍 출근해야 되서 일찍 자야 하는 우리의 상황을 정중하게 편지로 써서 윗집 우편함에 넣기까지 했지만 나아지는 기미는 거의 안보였다.
일단 화가 날대로 난지라 이제는 윗층에서 소음이 나기 시작하면 천정을 몇번 쾅쾅 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우리가 치면 위쪽에서 되받아서 쾅 치는 것 아닌가.
지난 주 토요일밤 새벽 2시경었다. 윗층의 소음 때문에 잠이 깬 남편이 천정을 한번 쾅 쳤다. 마침 윗집 여자의 남자친구가 같이 있었던 모양인데 상당히 예의없는 말투로 "우리도 곧 잘테니까 너무 그러지말지!"라고 했다. 안그래도 자다 깨서 성질이 날대로 난 남편 예상할 수 있듯 험한 소리가 나왔다.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 그냥 듣고 있었는데 곧이어 윗집 여자가 하이톤의 목소리로 뭐라고 그러고 이후 어떤 말들이 오고 갔을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한국같으면 아파트가 콘크리트로 지어져서 이런 일이 없을 것이고 내가 1년간 살았던 프랑스의 경우는 다른 건 몰라도 이웃간의 소음문제는 심하면 범죄에까지 해당된다. 조금만 옆집에서 시끄럽게 파티를 해도 바로 경찰을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파티를 하기 전에는 꼭 같은 건물의 모든 집들에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돌려야 하고 옆집에서 조금이라도 불평하면 당장 중지해야 한다. 영국인인 남편 왈 영국도 그렇단다.
우리 윗집 사람들이 좀 심한 경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고 싶긴 하지만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자각조차 못하는 걸 보면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공공질서 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경찰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고 주인은 같은 건물에 안살고 결국 매번 한밤의 혈전을 벌여야 하는 건지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