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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에세이] 잔다르크가 경험한 환각(I)

San Francisco

2016.03.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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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중반에서 15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전개된 백년전쟁은 프랑스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개된 전쟁이다. 주로 프랑스 영토에서 벌려졌는데 프랑스 북부는 영국군에 점령되어 영국 영토로 편입되었고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인해 프랑스는 전 국토가 피폐되어 있었다. 영국군과의 전투는 곳곳에서 패배했으며 경제는 마비상태에 빠졌다.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 무기력해졌으며 희망을 잃고 패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잔다르크(Joan d'Arc, 1412-1431)라는 젊은 여성이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그녀는 프랑스 동부의 한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아주 신실한 교인이었으나 가정 형편상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글도 읽은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잔다르크는 ‘아크 출신의 잔’이란 뜻으로 생전에 ‘오르레앙의 처녀’란 별명으로도 불렸다.

그녀는 13살 때부터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 그녀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섬광과 함께 나타나는 천사들의 방문을 받았다.(환시) 환상은 반복되었다. 구체적으로 천사들이 나타나 근처에 머무는 왕세자 아르마냑 공이 금세 왕위에 오를 것이며 그녀는 그를 도와 적군을 무찌른다는 다분히 예언적인 계시를 들었다.(환청)

“13세 때 동레미에 있는 아버지 집 정원에서 나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성당이 있는 오른쪽에서 굉장한 광휘에 휩싸여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맨 처음에는 겁을 먹었으나, 나는 곧 그것이 여태껏 내 주위에서 나를 따라다니며 지시를 내려주던 천사의 목소리임을 까달았다. 그는 성 미카엘이었다. 성녀 가타리나와 성녀 마르가리타 역시 보았는데,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며 훈계하며 내가 취할 행동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어느 것이 성인의 말인지 쉽게 분간해 낼 수 있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의 경우 그들은 광휘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친절했고 다정했다. 그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지금도 그들을 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세자는 사를르 7세로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 잔다르크는 그를 찾아가 알현하는 자리에서 수개월이나 영국군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오를레안 성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묘책을 밝혔다. 왕은 근가 오를레앙을 구원하기 위한 원정대를 편성해 주었다. 오를레앙에 도착한 원정대는 그녀의 지휘아래 9일 만에 적군을 무찌르고 성을 탈환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다른 지역에 있는 영국군을 공격하여 연승을 거두었고 그 결과 프랑스인의 사기는 다시 회복되어 하늘을 찔렀다.

그녀가 경험한 환각은 계시를 받았을 때에 국한되어 있을 뿐 평소에는 어떤 정신병을 앓은 기록이 없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그녀의 환각 경험이 일종의 ‘측두엽 간질'(Temporal Lobe Epilepsy)에서 전구증상(Aura)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고 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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