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단어는 나를 가리키는 대명사다. 영어의 'I'에 해당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영어처럼 대명사가 엄밀한 언어가 아니어서 '나'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어떨 때는 써서 도리어 어색한 경우도 많다. '나는 오늘 영화를 보았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운가? 언제 자연스러운가? 자연스러운 경우가 오히려 특수한 상황일 수 있다.
'나'는 다양하게 변화한다. 내가 복수가 되면 '우리'로 변한다. 나를 낮추면 '저'가 되고 '우리'를 낮추면 '저희'가 된다. '나'와 '저'가 주격조사를 만나면 '내'가 되고 '제'가 된다. 사투리에서는 '내는'이라는 표현도 쓴다. 또한 우리를 낮추었다고 말하는 '저희'의 경우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우리'와 '저희' 사이에는 대상에 분명한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듣는 상대를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저희'는 주로 듣는 상대가 배제된다. '우리 학교'와 '저희 학교'는 엄밀히 말해 다르다. '우리 학교'는 같은 학교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표현이고 '저희 학교'는 다른 학교 사람들에게 자기의 학교를 공손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나'를 쓰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나' 대신 쓰는 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 아빠'는 '나' 대신에 그냥 '엄마는, 아빠는'이라는 말을 쓴다. 선생님도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쓴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라는 말은 자신이 어렸을 때라는 뜻이다. 3인칭이 아니다. 물론 약간 아동을 대하는 말투로 보인다. 아이들은 자신을 표현할 때 자신의 이름을 '나' 대신 쓰기도 한다. '윤정이는 인형이 갖고 싶어요'라는 말에서 '윤정이'가 '나'인 경우가 있다. 아동의 말투라고 할 수 있다. 가끔 다 큰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깜짝 놀란다.
'나'를 어른이 사용할 때는 관계의 호칭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부르는 표현으로 나를 지칭하는 것이다. 나를 '아빠'라고 하면 '아빠'로, '아버지'라고 하면 '아버지'로 말한다. 윗사람의 말투다. 따라서 아랫사람은 자신을 관계로 지칭하지 않는다. 동생은 자기를 '동생은'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딸은 자기를 '딸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만 때에 따라 자기 이름으로 자기를 지칭할 뿐이다.
'너'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국어에서는 가장 잘 안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너'이다. '너'의 높임이라고 하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부부 사이에만 겨우 남아있다. '그대'라는 말은 옛 편지글에서 발견된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상대에게 질문을 해 보면 어색한 분위기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아랫사람에게는 '너' 대신에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민재는 뭐 먹고 싶니?'라고 말한다. 윗사람에게는 호칭을 지칭으로 사용한다. '엄마!'하고 불렀으면 '엄마는'이라고 표현하고, '선생님!'하고 불렀으면 '선생님께서는'이라고 표현한다.
'그'나 '그녀'는 더 심각하다. 우리말은 3인칭 대명사는 아예 없다고 말할 정도로 사용을 거의 안 한다. 어색한 번역투의 문장에서만 발견된다. '그녀는'이라는 말을 언제 쓰는가? 최근에 써 본 적은 있는가? '그녀'는 일본어 '가노죠(彼女)'의 번역이다. 심지어 '녀(女)'는 그대로 한자어다. 우리 대명사가 아니라는 분명한 근거다. 3인칭도 원래 우리가 부르는 말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어머니'는 '어머니'로 '할머니'는 '할머니'로 사용하면 된다. 괜히 '그녀'라고 사용하지 말라.
대명사의 사용이 분명한 언어에서는 한국어가 이상해 보이겠지만 대명사 사용도 대명사를 안 쓰는 것도 문화다. 한국인은 어떤 사람을 대신 부르는 말을 모두 대명사로 생각한 듯하다. '나'는 '아들, 형, 남편, 아빠, 아버지, 선생님, 교수님, 아저씨'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늘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