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턴시에라의 속살을 맛보다
2차대전 일본인수용소 보고
뜨뜻한 노천온천욕 즐기고
야생화 만발 데쓰밸리 유람
그 척박한 땅에 금가루가 뿌려진듯 '데저트 골드(Desert Gold)'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크기로야 겨우 쿼터 동전에 견줄 정도지만 생김새는 꼭 해바라기를 닮았다. 그 작은 꽃송이가 얼마나 피었으면 흡사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일까. 도로변을 따라 핀 꽃이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는 형국이다.
이때를 놓칠세라 원근 각지에서 달려온 사진작가들이 점점이 박혀 촬영에 몰두하고 있다. 매년 2월부터 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는 4월까지 서둘러 피어 씨앗을 뿌려야 하는 이때가 데스밸리의 성수기다. 멀리 서쪽으로 미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 마운틴이 눈고깔을 쓰고 웅자를 뽐내고 있다.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이스턴시에라(Eastern Sierra)를 주유했다. LA를 출발해서 395번 도로를 따라 북상, 모하비를 지나자 남북으로 장장 400마일에 걸쳐 뻗어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같이 달린다. 1만4000피트가 넘는 봉우리란 뜻으로 불리는 '포티너스'가 이 산맥에만 10개가 모여 있을 정도로 험난하다. 가주 전체엔 샤스타 마운틴과 화이트 마운틴까지 합쳐 모두 12개.
론파인을 지나니 왼쪽으로 들판에 망루 하나 삐쭉한 만자나 유적지(Manzanar Historic site)가 나타난다. 2차대전 당시 미국에 살던 12만여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했던 수용소 10개 중의 하나로 이곳에는 가주의 일본인 1만명이 종전까지 3년 반 동안 살았다.
지금은 기념관과 위령탑, 최근 당시의 막사를 재현해 짓고 있는 목조 막사들이 들어서고 있다. 때때로 당시의 생존자들이 모여 기억도 나누며 후세에 교육도 하며, 차근차근 통한의 역사를 재현해 내고 있는 그들의 근성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기분도, 눈 쌓인 산봉우리도 자꾸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던 참에 온천이라니, 귀가 솔깃해진다.
빅파인을 한참 지나, 도대체 있기나 할까 의구심이 드는 산길을 5분여 달리니, 시에라네바다의 산자락에 더운 김 솟는 노천미네랄온천(Keough's Hot Springs)이 자리하고 있다.
유황온천이 아니라, 머리 아플 일도 없다. 탕 앞으론 수영장도 큼지막하다. 어느새 짧은 겨울해가 희미한 잔광을 남기고 뉘엿뉘엿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있다. 드디어 숙소가 있는 비숍에 도착, 짐을 내려 놓고 거리로 나섰다. 해질녘 낯선 거리에서 기웃대며 어슬렁 거리기, 이 또한 여행의 또다른 맛이 아닐까. 길 건너 유명하다는 바비큐집으로 갔다. 그리 크진 않지만 이미 자리마다 사람들이 아늑한 분위기 속에 갈비를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출출하던 참에 연한 돼지갈비와 부드럽고 담백한 훈제 소고기 한접시를 낼름 비웠다. 다시금 거리로 나서니, 길 건너에 그 유명하다는 빵집이 보인다. 일행은 빵도 사고, 시에라네바다의 세이지꿀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이튿날, 새벽부터 서둘러 데스밸리로 길을 잡았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성수기인지라, 밸리에 들어서니, 주차장이고 캠핑장이고 적잖이 붐빈다. 길을 따라서는 노란 야생화가 지천이다. 모래 둔덕(Sand dune)에선 맨발로 걸어도 보고, 악마의 골프장(Devil's golf course)에선 대자연의 경이로움도 맛보고, 침전과 풍화를 거쳐 형형색색의 무늬로 빚어진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에도 올라보고…
하룻밤 이틀낮, 주행거리 850마일, 이스턴시에라의 속살을 이렇게도 알차게 맛볼 수 있을까.
▶취재협조:춘추여행사(213)381-8000
------------------------------------------------------------------------
어디서 잘까
가을 비숍은 애스펀(자작나무) 단풍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 하지만 이 시기에는 숙소 잡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시내에 모텔들이 적지 않다. 라킨타인(La Quinta Inn)이 그중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와이파이, 아침 식사도 무료. 1박에 100달러 선.
무얼 먹을까
▶홀리스모크 BBQ:소ㆍ돼지ㆍ닭고기 비비큐로 유명한 곳. 옐프, 트립어드바이저 등 여행사이트 등의 평가가 아주 좋다. 소고기를 12시간 동안 히코리 나무로 훈제한 부드럽고 담백한 텍사스 스타일의 '롱혼(The Longhorn)'이나 돼지고기를 세인트루이스식으로 잘라 구운 돼지 갈비(High on the Hog Ribs)는 누구나 손가락을 치켜들 정도로 훌륭하다. 예약없이 줄선 순서대로 입장. 맥주 한잔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에릭샤츠 베이커리:입소문이 많이 난 명소로 누구나 꼭 들르는 곳. 한인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이미 유명하다. 유럽식 빵과 샌드위치, 쿠키 등 선물용으로도 좋다. 세이지 꽃에서 채밀한 벌꿀도 빼 놓을 수 없겠다.
라킨타인에서 두 곳 모두 걸어서 3분 거리다.
글·사진=백종춘 객원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