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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아생연후살타

김 도 수 / 자유기고가·뉴저지

논개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2차 공격으로 진주성이 함락된 계사년 1593년에 진주의 명물 남강에서 일어난 실화다. 난공불락(難攻不落) 같았던 성이 함락되고 군사들은 물론 시민들조차 대부분 죽고 잿더미로 변한 성루에서 관기 논개가 점령군 왜장을 남강의 가파른 벼랑 위로 유인한 뒤 의분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남강 속으로 함께 투신한 이야기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진주를 중심한 서부 경남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좀 더 사실적이며 뉘앙스 또한 격정적이다.

전쟁 승리에 취한 왜병들이 촉석루 저 아래 강물 위에 두둥실 머리를 내밀고 떠 있는 평평한 넓고 고운 빛깔의 바위를 멍석 삼아 관기들과 어울려 부어라 마셔라 광기를 부릴 때 논개가 옆자리의 만취한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급물살로 요동치는 남강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시 논개의 10손가락 마디마디는 가락지 깍지를 만들었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쇠도리깨로 무장한 장졸 몇을 강어귀에 숨겨두는 치밀함도 보였다는 전언이다.

아무튼 그녀가 투신한 바위는 '의암(義菴)'으로 명명되었고 1722년에는 그녀의 충절을 기려 조정으로부터 의기(義妓)에 봉해지고 그녀의 이름이 '의암 논개'로 칭송되면서 매년 그녀의 사당에서 논개의 나라사랑을 기리는 제사와 함께 시민이 참여하는 예술축제가 열린다.

요즘 정치권에서 '의암 논개'의 충절을 훼손하는 '정치 논개'가 회자되고 있어 유감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경북 구미의 3선의원으로 대표적인 친박 김태환 의원을 새누리당 공관위가 컷오프한 경우를 '논개작전'이라며 정치권 특히 비박계가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비교가 좀 그렇다. 차라리 바둑의 사석작전(捨石作戰)과 궤를 같이한다는 표현이 맞아 보인다. 죽은 자신의 돌을 미끼로 세력 확장을 노리는 사석작전은 고도의 상황 판단과 계산력의 결과임을 감안할 때 친박의 선 내사람 후 타 진영의 가지치기 수법은 목적과 방법이 사석작전을 빙자한 꼼수에 가까워 보인다.

'꼼수'라는 말은 바둑에서 나온 순수 우리말이다. 정수나 정석의 반대어로 비견되는 꼼수는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일종의 속임수다. 그런데 바둑판에서나 있을 법한 불의한 꼼수들이 정치판에도 자주 등장한다. 유권자인 국민들의 눈을 피해 장막 뒤에서 정치적 검은 흥정을 하고는 애국충정의 고뇌에 찬 결단인 양 포장해서 내놓는 저질스런 정치 행위는 누가 뭐래도 정치적 꼼수에 불과하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 여야 모두 적잖은 꼼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정치인들이 바둑을 통해 배워야 할 진정한 승부수가 있다. 옥새의 수다. 이 수는 판세가 불리한 대국자가 승부를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일부러 자신의 대마를 죽이는 허수를 두어 대국을 끝내는 경우의 수다. 행여 무리수로 손님 실수를 유도하는 꼼수를 두는 대신 명쾌하게 패배를 선언하는 바둑만이 지닌 아름다운 승복 수단이다.

지난주 이런 바둑의 옥새의 수가 정치판에 동명이질(同名異質)로 등장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청와대와 친박 세력에 밀리기만 하던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준비한 벼랑끝 한 수였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휘두르는 조자룡의 헌 칼에 더는 못당하겠다며 자신이 쥐고 있던 당인과 대표인을 인질로 6명의 공천장에 날인을 거부한 채 부산행을 택한 것이다. 자못 진박 키드들 몇몇은 선거판에 명함조차 못낼 절체절명의 상황을 연출한 것까지는 볼 만했으나 끝내 30시간을 못버티고 야합해 옥새가 족쇄가 될 위험을 자초했다.

바둑의 기본은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 즉 자신이 먼저 살고 상대를 공격하라는 말이다. 이 격언 또한 정치 지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먼저 자신과 진영의 힘을 키운 뒤 이길 수 있는 경우의 묘수들을 두라는 말이다. 이번 김 대표의 옥새의 수는 적을 당혹시키는 험수는 될지언정 정곡을 찌르는 비수는 아니다. 상황 또한 그가 이런 수를 둘 만큼 녹록하지 않다. 부글거리는 친박 진영의 융단 폭격을 총선 후 어떻게 감당하며 대권가도를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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