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앙리 2세에게 시집간 피렌체 메디치가의 딸, 프랑스 음식 르네상스 열었다

Los Angeles

2006.07.07 11:4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월드컵 결승전 진출 프랑스·이탈리아, 요리 이름만 다를 뿐 한 뿌리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의 결승전이 내일로 다가왔다. 독일의 베를린 올림피아 스타디온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끝이 날까?

크레페를 이용한 후식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공통의 요리.

크레페를 이용한 후식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공통의 요리.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국경도 접해 있고 지중해를 연하고 있으며 유럽의 라틴 국가라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음식 문화 역시 한 뿌리에서 연유된 이 두 나라가 올해 월드컵 결승전에 함께 진출하게 된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프랑스 요리의 원형은 이탈리아다. 르네상스 시대만 하더라도 프랑스의 음식 문화는 이태리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떨어져 있었다. 프랑스 요리는 14세기 후반 샤를르 5세의 요리사였던 기옴 딜레이르에 의해 비로소 본격적인 체계가 잡혔다고 전해진다.



그 체계가 곧바로 지금처럼 세련된 요리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재료를 걸쭉하게 갈아 닥치는 대로 향신료를 뿌린 수프 삶은 요리 파이 종류는 소재 본래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한 조잡한 음식들로 세련된 현재의 프랑스 요리와는 전혀 딴 판이었다.

프랑스 요리가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 데는 피렌체의 세도가인 메디치가의 영향이 크다. 당시 피렌체 공국의 메디치 가문은 유럽 다른 왕국 아니 그 이상의 세력을 갖고 있었다. 1533년 메디치가 로렌조 2세의 딸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는 프랑스 국왕인 앙리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자신이 데리고 있던 1급 요리사와 급사를 비롯해 다채로운 조리법 조리용구 포크와 나이프 등의 식기류 식사 에티켓 50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문화의 기초를 프랑스 궁정으로 가져간다.

카트린느 드 메디치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간 요리사들의 활약으로 프랑스 음식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사탕과자 케이크 잼 각종 소스의 제조법이 전해지게 된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요즘 프랑스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게 식기를 놀릴 수 있게 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포크는 물론 스푼도 제대로 없어 거의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던 문화 후진국이었다.

잘 먹고 잘 입는 것에 관심과 정열이 많았던 카트린느 왕비는 루아르 밸리 가까이 위치한 그녀의 아름다운 저택 슈농소(Chenonceau) 성에서 자주 파티를 열었다. 당시 연회에는 크넬이라는 집닭 닭 벼슬 송아지 돼지 내장과 뇌로 만든 장 스튜 아티초크 튀김 등 일반인들이 듣도 보도 못한 진귀한 요리들이 수없이 올려졌다.

생각해보라. 그때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걸쭉한 스튜 크기만 하고 질긴 고깃덩이 그리고 요리에 곁들여진 누에콩 외에 먹어 본 일이 없던 프랑스인들이 섬세하고 참신하고 향기롭고 맛있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요리들을 앞에 대하면서 겪었을 심한 문화적 충격을. 산해진미를 앞에 대한 프랑스 귀족들은 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야말로 '음식 르네상스'라 할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남의 집 잔치에 초대돼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주부들은 십중팔구 '이건 어떻게 만든 거예요?'라며 조리법을 물어보기 마련이다. 까뜨린느 왕비의 음식에 대한 노하우도 그런 식으로 당시 귀족 사회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요리에 조예가 깊은 앙리 4세 그리고 열정적인 미식가로 알려진 그의 손자 루이 14세가 출현하면서 궁중 요리는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포크를 쓰는 것이 서툴렀던지 여전히 맨손으로 식사를 했었다고 전해진다.

요리사들은 앞을 다투어 새로운 요리를 창조했고 아름답고 보기 좋게 요리를 담아내는 법의 연구에도 열심이었다. 미식을 추구하는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며 각 국의 궁정 요리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권 계층에 한해 있던 식도락의 기쁨이 신흥 시민 계급에게 개방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다. 왕후와 귀족에게 고용돼 있던 요리사들은 혁명으로 직업을 잃게 되자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을 개업하든가 아니면 유명한 요리점의 요리사가 되어야만 했다. 파리 등 대도시에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개업하게 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

온난한 기후와 다양하고 풍성한 재료 식사의 즐거움을 더해 주는 풍부하고 질 좋은 와인 그리고 주변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향신료와 물자 기술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도 오늘날 프랑스가 요리 왕국의 영예를 차지하는데 공헌한 요인들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이름만 달리 불릴 뿐 내용은 같은 지중해 연안 요리들을 보면 이런 뿌리 찾기는 더욱 설득력이 있다.

프랑스 지중해 연안 마르세이유 지방의 해물 수프인 부야베스(Bouillabaisse)는 이탈리아에서 초피노(Cioppino)라고 불리는데 내용물이나 맛이 거의 같다. 원래 부야베스는 가난한 어민들이 팔고 남은 생선을 한꺼번에 넣고 끓여먹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음식. 부야베스에 들어가는 해물은 무려 9가지 이상이다.

생선과 해산물을 다듬어 냄비에 넣고 갖은 향신료로 맛을 낸 뒤 큼직하게 썰어놓은 야채와 피시 스톡을 붓고 끓이면 프랑스 마르세유의 전통요리 부야베스가 만들어진다.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부야베스는 한번 끓이면 양이 많아서 마을 잔치나 파티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요리다. 지중해 연안에서 풍부하게 잡히는 해산물을 이용한 초피노 역시 거의 조리방법이 같다.

홍합 요리 역시 프랑스와 이탈리아 양쪽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음식. 올리브 오일에 마늘과 샬롯과 파슬리 화이트와인을 넣고 볶다가 홍합을 넣고 익힌 요리로 짭조름한 바다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이 요리를 프랑스에서는 물 마르니에(Moules Mariniere)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에서는 주파 디 꼬제 인 비앙꼬(Zuppa di Cozze in Bianco)라 한다. 이름만 맛과 재료 모두 유사한 요리이다.

한 가지 뿌리의 음식으로 몸이 다져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선수들. 과연 이번 월드컵 결승전의 영광은 누구에게로 돌아갈까 귀추가 주목된다.



스텔라 박 객원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